프로그램 열전(1): 한글과컴퓨터 아래아한글 1
컴퓨터를 사용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인터넷이 대중화된 이후 사람에 따라서는 컴퓨터가 인터넷 전용 머신으로 쓰이기도 한다. 혹은 게임 플레이용으로 쓰는 사용자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이 없던 시절 컴퓨터의 절대다수 사용처는 개인보다 사무 환경이었다.
사무용 컴퓨터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 처리를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존재다. 적당한 기능과 안정성을 가진 소프트웨어는 1979년 발매된 비지캘크(VisiCalc)가 증명했듯, 킬러 소프트웨어 하나가 그 기종의 명운까지 좌우할 정도로 중요했다. 비지캘크 이후에는 로터스 1-2-3을 거쳐 마이크로소프트 엑셀이 주류 스프레드시트의 계보를 이었다.
스프레드시트와 더불어 중요한 또 하나의 범용 소프트웨어가 워드프로세서다. 간단한 낱장 문서부터 복잡한 보고서까지, 문서 작성의 가장 기본이 되는 워드프로세서를 국내 환경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타 문화권과는 다른 문자인 ‘한글’ 입출력이 원활히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1980년대 중후반만 해도 한글이 제대로 지원되는 워드프로세서는 많지 않았다. PC 하드웨어 제조 자체는 삼보컴퓨터를 시작으로 활발히 이뤄지는 편이었지만 소프트웨어가 받쳐 주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시도가 없지는 않았다. PC 사업에 뛰어든 대기업들은 워드프로세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사 제품에 담을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80년대 중후반 시판됐던 워드프로세서는 삼보컴퓨터의 보석글, 삼성전자의 글벗, 금성사의 하나워드, 그리고 현대전자의 바른글 등이 있었다. 그 중 보석글과 하나워드가 그나마 주류로 통했다. 그러나 이들은 기능이 어딘가 불완전하거나 외국 소프트웨어를 한글화한 것에 불과해 실무에서 사용하기엔 무리가 따랐고 PC별 호환도 어려웠다. 실질적인 국산 워드프로세서의 시작은 한컴퓨터연구소에서 IBM PC용으로 개발한 한글2000(1988)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같은 파일이라고 해도 화면상에 보이는 것과 프린터 출력물이 같지 않았던 시절, 한글2000은 한글 카드 같은 별도의 부가 장치 없이 보이는 대로 출력되는 위지윅(WYSIWYG) 기능을 처음 구현한 획기적 제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이찬진은 국내 실정에 맞는 더 나은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서울대 컴퓨터연구회(SCSC)에서 만난 김택진, 김형집, 우원식 등과 함께 프로그램 개발을 시작했다. 한컴퓨터연구소 설립자 강태진에 의하면 이찬진은 자신이 처음으로 채용한 직원이었다고 한다. 이찬진은 한글2000의 헤비 유저이기도 했다. 그런 경험들과 노력의 결과로 1989년 초 아래아한글(한글)의 최초 버전인 1.0이 만들어졌다.
프로그램은 만들었지만 판매하는 방법은 잘 몰랐던 이찬진은 당시만 해도 각종 전자기기의 메카였던 세운상가로 향했다. 그가 들어간 곳은 컴퓨터 가게 러브리컴퓨터였다. 3공 링바인더에 제품 매뉴얼과 5.25인치 플로피디스크를 담아 판매용 패키지의 형태를 갖추었다. 패키지 외부에는 러브리컴퓨터의 로고를 넣었다. 러브리컴퓨터를 통해 4월 말 판매되기 시작한 한글은 대박의 조짐이 보였다. 이찬진은 유통을 일단 러브리컴퓨터에 맡기고, 그때까지 벌어들인 수익 5천만원을 바탕으로 한글 기계화에 관심을 쏟던 공병우 박사가 서울 종로구 와룡동에 마련한 한글문화원 한쪽 구석을 빌려 1990년 한글날 ‘한글과컴퓨터’를 정식 창업했다. ‘한컴’의 출발이었다.
한글의 히트 요인은 여러 가지였다. 당시 옛한글 고어를 포함한 모든 한글을 표현할 수 있는 워드프로세서는 한글이 유일했으며, 자체 내장한 다양한 글꼴과 문서 내 선 그리기 기능을 지원했다. 특수문자와 외국어 지원도 한글이 가장 뛰어났다. 중요한 위지윅(WYSIWYG)도 물론 지원했다. 한글은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한글 1.0은 한글의 정보화에 기여한 기술・문화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2013년 컴퓨터 소프트웨어로는 처음으로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현재 남은 실물을 찾지 못한 상태다. 어쨌든 1992년 7월 선보인 한글 2.0은 강화된 기능을 바탕으로 2개월간 3만 카피에 달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한글과컴퓨터는 주력 상품 한글의 인기를 바탕으로 1991년 매출 10억 원, 93년에는 100억 원을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