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 캐릭터, 팩맨의 탄생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 캐릭터, 팩맨의 탄생

한쪽으로 삼각형 입을 벌리고 있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캐릭터 팩맨은 개발사 남코를 거대 게임사로 만든 주인공이다. 日 남코는 원래 유원지에 있는 놀이기구를 만들던 회사였다. 그러던 중 퐁으로 인해 새로운 시장이 열리자 타이토 등의 다른 회사와 함께 비디오 게임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74년에는 美 아타리의 자회사인 아타리 재팬을 50만 달러라는 거액에 인수하는 등 비디오 게임 사업에 공을 들였으며, 1978년에는 핀볼의 비디오 게임 버전인 지비(Gee Bee), 1979년에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개량한 갤럭시안(Galaxian)을 내놓으며 꾸준히 가능성을 노렸다. 투자의 효과는 곧 나타났다. 남코가 1980년 6월 선보인 오리지널 게임인 '팩맨'은 오늘날 대표적인 고전 게임 중 하나로 꼽히는 불후의 명작이다.

1970년대 후반, 히트 게임이었던 퐁과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장르는 스포츠와 슈팅 게임이었다. 그 영향으로 다른 게임도 대부분 이들의 아류작이 많았다. 그런데 쏘고 부수는 형태의 이들 게임은 남성 유저가 중심 고객층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게임 센터는 점점 소수의 골수 남성 유저 외엔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 되어 갔다. 남코 수석 디자이너로 재직하던 이와타니 토오루는 현재의 출시 방향으로는 여성이나 커플 유저를 끌어들이는데 한계가 크다고 판단했다. 그러기 위해선 기존 게임의 경쟁성·공격성을 순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토오루와 남코 개발진은 캐릭터가 무언가를 먹으면서 미로에서 길을 찾아 스테이지를 깨는 색다른 게임을 구상했다. 긴장감을 위해 캐릭터를 죽이는 악역인 고스트도 추가됐다. 캐릭터는 고스트를 직접 죽일 수 없고 피해 다니게 함으로써 공격성을 제거했다(다만 특별한 구슬인 파워 펠렛을 먹으면 주눅 든 고스트를 잡아먹을 수 있다). 그러나 고스트 역시 공포스럽거나 기괴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별다른 설명이 없으면 선한 캐릭터로 여겨질 만큼 귀여운 디자인이다. 4가지로 나뉘는 고스트는 성격과 행동 패턴도 각자 다르다.

메인 캐릭터와 게임의 이름은 ‘팩맨’으로 정해졌다. 처음엔 뻐끔뻐끔 먹는다는 뜻을 가진 일본어 ‘파쿠파쿠’에서 모티브를 얻어 'Puck Man’이란 명칭이 붙었지만 영어로 바꾸면 비속어와 흡사한 발음이 되어 곧 팩맨(Pacman)으로 변경됐다. 정원의 한쪽을 삼각형 모양으로 잘라낸 팩맨 특유의 디자인은 이와타니 토오루가 한 조각이 빠진 피자 한 판을 보고 캐릭터의 힌트를 얻었다는 설이 널리 퍼져 있다. 이외에 입 모양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다 보니 만들어진 형태라는 설도 있다. 다양한 색의 유령과 노란색 메인 캐릭터가 활발히 움직이는 팩맨은 당시 아케이드 게임으로선 보기 드물게 화려한 작품이었다.

출시와 동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끈 팩맨은 기존 슈팅 게임과는 다른 캐주얼 게임의 시초로 여겨진다. 또한 골수 유저가 아닌 다른 사용자를 게임 센터로 끌어들임으로써 장르의 다양화와 게임 대중화를 이끌었다. 아케이드 게임기의 인기를 발판 삼아 아타리 2600 같은 가정용 게임기와 애플2, 코모도어64, IBM PC 등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기종에 이식되면서 열풍은 계속됐다.

엔딩을 제외한 255 스테이지를 통과하면서 한 번도 죽지 않고 모든 도트와 파워 펠렛, 과일 등을 먹으면 최고 3,333,360점을 기록할 수 있는데, 이 점수는 팩맨이 세상에 나온 지 자그마치 19년이 흐른 1999년 7월 4일 미국의 게이머 빌리 미첼이 6시간가량의 플레이 끝에 달성했다.

간단하면서도 각인되기 쉬운 이름, 귀여운 캐릭터로 응용되기 충분한 잠재력을 지닌 팩맨은 도시락, 만화, 잡지 표지에 등장하는 등 단순 히트 게임을 넘어 세계적인 대중문화 아이콘의 반열에 올랐다. 런칭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다양한 브랜드가 팩맨을 주목하고 있다. 기념일에 맞춰 메인 타이틀 디자인을 바꾸는 구글은 2010년 팩맨 런칭 30주년 기념 타이틀을 공개했고 2023년에는 레고와 반다이남코의 협업으로 팩맨 레고가 출시됐다. 팩맨을 즐길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기를 모티브로 조이스틱과 동전 투입구까지 그대로 구현했다. 작은 블럭을 쌓아 사물을 만들어 나가는 레고와 작은 것들을 모아 단계적으로 발전하는 팩맨의 결합은 어쩌면 게임과 블록의 콜라보 중 가장 어울리는 조합일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