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특별한 팝업스토어, 니콘 기록공작소
2023년 10월 12일부터 16일까지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인 무대륙 2층에서는 이전에 흔치 않았던 카메라 메이커의 팝업스토어가 열렸다. 니콘이 연 '니콘 기록공작소'가 그것이다. 메인 포스터의 불규칙한 한글 로고가 인상적인 니콘 기록공작소는 니콘이 발매한 신제품 미러리스 카메라인 Z f를 홍보하기 위한 것이다. Z f와 Z fc 등 최근 발매된 제품은 니콘이 내놓았던 예전 SLR의 디자인을 복각한 모습이다. 별도 설명이 없거나 따로 뒷면을 보지 않으면 필름카메라로 오해할 정도의 디자인이다. 날로 경쟁이 격화되는 시장에서 과거 헤리티지를 살린 본격적인 '감성' 마케팅으로 차별화 포인트를 잡은 셈이다.
과거 필름 SLR을 다루던 느낌으로 감도와 셔터스피드를 비롯한 각종 조작부를 직관적으로 다룰 수 있게 돌출시킨 것이 특징인 Z f의 디자인 DNA는 1977년 선보인 니콘 FM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촬영에 전자공학이 개입하지 않는 완전 기계식 카메라인 FM은 고급형인 니콘과 저가형인 니코마트로 브랜드를 이원화했던 일본광학이 라인업을 '니콘'으로 다시 일원화하면서 내놓은 보급형 모델이다. 깔끔한 스타일과 최고 셔터스피드 1/1000초의 무난한 사양, 기계식 작동이 보장하는 신뢰성으로 당대 사진가의 세컨드 카메라로 사랑받았다. 완전 기계식 카메라이므로 전지는 노출계 작동을 제외하면 필요치 않다.
니콘은 이에 만족할 수 없었는지 1982년 셔터스피드를 1/4000초로 2스텝 개선하고, 다중 노출 레버나 뷰파인더 정보 배치 같은 소소한 사항을 개선한 FM2를 내놓았다. FM2 역시 사진과 학생의 표준 장비로 불릴 정도로 대단한 히트를 기록하며 수십 년간 니콘의 대표적인 효자 모델로 활약했다. 둘의 외형은 거의 같지만 FM보다 FM2의 인지도가 월등히 높아서인지 팝업 스토어에는 스타일의 뿌리를 FM2로 얘기하고 있다. 함께 전시된 동시기 니콘의 플래그쉽 F3도 눈에 띄었다.
풀프레임 미러리스인 니콘 Z f는 대부분의 바디를 마그네슘 합금으로 제작했고 전문가급 방진·방적 성능을 갖추고 있다. 이미지 센서는 유효 2,450만 화소, 이미지 처리 엔진은 Z9에 들어가는 것과 동일한 EXPEED 7을 탑재했다. 4K UHD 동영상 촬영을 지원하며 ISO 범위는 100-64000을 지원한다. 흑백사진 느낌을 즐기는 최근 촬영자들의 트렌드를 반영하여 컬러와 모노크롬 전환을 레버 조작 한 번으로 가능하게 만든 것도 특징이다. 전반적으로 클래식한 바디에 최신 사양을 담아내는 데 중점을 두었다.
현장 구성은 크게 전시, 체험, 굿즈의 3가지 존으로 이뤄져 있고 곳곳에 Z f의 목업이 놓여 관람객의 이해를 도왔다. 전시 존에서는 니콘의 제품과 함께 Z fc를 이용해 자신만의 취향을 담아 일상을 기록해 온 ‘오감기록단’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메이커 상징색인 노란색을 써서 양장제본으로 만든 작지만 알찬 사진집이 팝업 콘셉트와 들어맞는 느낌이다. 체험존인 ‘니콘 아지트’에서는 신제품 Z f와 Plena 렌즈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며, 굿즈존인 ‘작은 기록의 방’에서는 니콘 크리에이터스 굿즈와 니콘 매거진 등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업로드할 경우 노란 볼펜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스탬프 미션을 완료할 경우 크리에이터스 굿즈 세트를, 현장에 니콘 카메라를 지참한 고객에게는 크리에이터스 스트랩을 증정했는데 이 때문인지 은색 FM2를 멘 사진가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야말로 과거와 현재의 조화라 할 만하다. 행사 마지막 날이었지만 Z f에 대한 뜨거운 관심 만큼이나 많은 질문이 쏟아졌는데 관계자들 역시 지친 기색 없이 즐겁게 대화하는 모습이었다. 향후 시장에서의 순항을 예감하는 순간.
1980년대 말 FD 마운트를 자동 초점을 지원하는 완전 신형의 EF 마운트로 바꾸면서 과거와의 단절을 택한 캐논은 ‘헤리티지’라는 영역에선 크게 내세울 만한 강점이 없다. FD 마운트 시대에는 니콘에 밀려 2인자 신세를 면치 못했기에 당시를 굳이 소환하는 것이 썩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EF 마운트로의 과감한 전환은 현재 업계 수위를 다투는 캐논 카메라가 있게 해준 것도 사실이다. 헤리티지의 유지와 단절이라는 상반된 방향을 택한 두 거대 기업의 경쟁은 어찌 보면 컴퓨터 시장에서 윈도 진영과 맥이 벌이는 공방전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