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별이 만들어낸 전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1980년대 초 아타리 쇼크 이후 비디오 게임기 시장은 일본 업체, 그 중에서도 닌텐도가 주도했다. 패미컴으로 게임 시장을 쇼크에서 건져낸 닌텐도는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동키콩 등 지금도 회자되는 다양한 킬러 타이틀을 앞세워 시장을 선도했다. 패미컴 만큼은 아니었지만 세가 역시 메가드라이브(북미명 제네시스)를 통해 저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그 밑에서는 또다른 혁신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변방이었던 소니가 홀연히 선보인 플레이스테이션이 그것이다.
패미컴 시리즈로 대표되는 닌텐도 게임기의 가장 큰 특징은 게임을 담는 저장 매체로 롬(ROM) 카트리지를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초기에는 MSX 기반 게임기도 카트리지를 사용할 정도였다. 그런데 게임 그래픽이 점차 발전하고 요구되는 스펙과 용량이 높아짐에 따라 저장 용량이 부족하고 생산성과 가격에서 타 매체에 비해 불리한 롬 카트리지의 단점이 점차 부각되기 시작했다. 오직 게임 시장에서만 쓰이는 롬 카트리지는 범용성도 부족했다. 하지만 시장 지배력이 큰 닌텐도가 이를 고집했기 때문에 시장은 카트리지 위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닌텐도 역시 이를 모르지 않았기에 점차 이런 한계에서 벗어날 구상을 하고 있었다. 대안으로 선택된 것은 대용량과 범용성을 갖춘 CD-ROM이었다. 1990년경 닌텐도는 CD 규격의 개발사로서 관련 노하우를 갖춘 소니와 합작하여 슈퍼 패미컴용 CD-ROM 확장 장치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 여기에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는 일을 위한 컴퓨터(Work-Station)와는 다른, 놀이를 위한 컴퓨터(Play-Station)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게임에 관한 한 독점적인 권한을 추구하던 닌텐도와 CD라는 매체의 원천 기술을 가진 소니의 만남은 어느 정도 예견 가능한 것이었다. 고집 센 둘의 합작은 결국 닌텐도의 계약 파기로 불발되고 말았다. 소니와 결별한 닌텐도는 CD의 공동 개발사인 필립스와 접촉했으나 결국 확장 장치는 출시되지 못했다. 롬 카트리지로 전성기를 구가했고 이미 모든 생산라인과 시스템을 맞춰 놓은 닌텐도로선 아무래도 자체적으로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새 매체 탐색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트리니트론 모니터, 워크맨, 디스크맨 등을 연이어 히트시킨 소니는 이견 없는 세계 최고의 전자제품 기업이었으나 게임과는 연관 짓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소니 측은 파기된 프로젝트를 이어받아 게임기 시장에 독자적으로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그 사전 포석으로 1993년 미국에 관련 자회사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이듬해엔 게임기의 개발을 계속 진행하여 개발자 쿠타라기 켄의 이상이 집약된, 3D 그래픽 게임을 실행할 수 있는 CD-ROM 드라이브 부착 32비트 가정용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을 드디어 발매했다.
1994년 12월 3일 시판에 들어간 플레이스테이션의 인기는 대단했다. 게임기 자체의 성능과 함께 닌텐도의 독주에 지친 서드파티 개발사를 많이 끌어들인 것이 주효했다. 특히 남코와 인기 타이틀 〈파이널 판타지〉를 만들던 스퀘어 같은 대형 파트너가 소니 진영으로 옮겨 간 영향이 컸다. 닌텐도가 채택한 롬 카트리지 규격으로 게임을 제작해 판매하려는 회사는 판매가 발생할 때마다 일정 로열티를 닌텐도에 지불해야 하는 등 당시 닌텐도의 상술은 극에 달해 있었다. 게다가 1년에 발매 가능한 게임 수도 정해져 있었고 유통도 닌텐도를 통해야 한다는 조건은 지금 봐도 무리가 상당하다.
반면 CD-ROM은 폐쇄적인 롬 카트리지 규격에 비해 제작이 쉬웠을 뿐 아니라 부당한 여러 제한이 없었기에 이는 사실상 정해진 수순과 같았다. 독점적 지위를 최대한 활용해 이득을 챙기던 닌텐도에 지친 서드파티 개발사들이 소니라는 새 파트너가 나타나자 바로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린 것이다. 닌텐도와 세가는 각각 닌텐도64와 세가 새턴으로 맞불을 놓았지만 대세가 된 플레이스테이션의 인기를 극복할 수 없었다. 특히 닌텐도는 실패에서 배우지 않고 후속작 닌텐도64에도 고성능 멀티미디어 게임을 감당할 수 없는 롬 카트리지 시스템을 채택했다가 한 번 더 실패하고 만다.
닌텐도의 배신으로 인해 탄생한 플레이스테이션은 한국에서도 플스라는 약칭으로 불리며 2, 3, 4 등으로 이어지며 성공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았고, 2006년까지 1억 249만 대가 팔려나가는 기록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