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IP의 최강자, Arm

반도체 IP의 최강자, Arm

ChatGPT로 촉발된 인공지능(AI) 열풍으로 인해 제대로 된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한 핵심 부품, 반도체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쪽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 보통 사람이라면 대한민국 수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효자 물품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을 텐데, 사실 계속해서 고도화되는 정보화 사회에서 반도체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2023년 대한민국의 반도체 수출액 동향. 총 수출액 6,326.9억 달러 중에 반도체 부문은 986.4억 달러(약 15.6%)를 기록했다. (자료 출처 : 대한민국 산업통상자원부)

이에 디바이스포트에서는 인공지능 열풍의 핵심 부품으로 꼽히는 HBM을 비롯한 첨단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기술들과 반도체 생태계, 반도체 IP에 대해 여러 차례 소개한 적이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반도체 생태계, 반도체 IP와 관련해 설명하면서 한 가지 미진한 점이 있었는데, 반도체 IP 부분의 최강자인 ‘Arm’과 관련된 설명을 빼먹은 부분이다.

당시 기사의 취지는 반도체 IP가 무엇이고, 이로 인해 반도체 생태계 구성원들이 분업화되어 각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으니 특정 기업인 ‘Arm’을 따로 소개하는 건 적절하지 않아 생략했는데, 반도체 IP와 관련해 Arm의 위상이 워낙 크다 보니 아예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아 별도의 기사를 준비해 보았다.

[팹리스와 파운드리, 반도체 생태계 이야기] 기사 보러가기


세 줄 요약

  • 칩 설계의 효율화를 높이고자 반도체 IP가 탄생했다.
  • Arm은 반도체 IP 부분, 특히 대부분을 차지하는 Processor IP 분야에서는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 Arm이 제공하는 칩, 명령어 세트 라이선스를 통해 애플, 퀄컴, 삼성전자 등 유수의 회사들이 자체 칩을 만든다.

반도체 IP에 대해 간단히 복습

우선, Arm을 이해하려면 반도체 IP(Intellectual Property Rights, IP 또는 IPR)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보통 반도체 산업에서 IP라 하면, 특정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설계된, 재이용 가능한 반도체 설계 블록을 의미한다. 회로처럼 우리가 단번에 이해하기 쉬운 부분은 물론이고, 칩 레이아웃 디자인, SoC(System on Chip) 또는 FPGA(Field Programmable Gate Array) 회로 설계 시 마이크로프로세서, 메모리, 디지털 신호 처리기, 아날로그 신호 처리기, 다양한 입출력(I/O) 회로 등 매우 다양한 부분이 반도체 설계 블록(반도체 IP)에 포함된다.

반도체 IP가 탄생한 이유는 칩 설계의 효율화를 위해서다. 반도체 디자이너가 이를 활용함으로써 반도체 칩을 빠르게 개발하도록 도우며, SoC처럼 복잡한 반도체 제품 개발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반도체 IP를 이용하면 비용 절감, 시간 절약, 최적화와 확장성, 위험 감소, 경쟁력 향상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반도체 산업 전반을 지칭하는 반도체 생태계는 역할에 따라 팹리스, 파운드리, IDM 등 여러 분야로 나눌 수 있는데, Arm으로 대표되는 반도체 IP 기업은 생태계의 뿌리에 해당한다.

반도체 생태계의 구성원을 피라미드 방식으로 표현한 그림. 가장 아래쪽에 반도체 IP 제공사들이 자리하고, 그 위로 Electronic Design Automation(EDA, 디자인하우스에 해당), 팹리스, IDM, 그리고 가장 위에 파운드리(TSMC, 삼성전자 등) 등이 자리한다. Arm은 가장 아래쪽에 자리한다.

Arm은 어떤 회사인가?

Arm은 정확히는 Arm 홀딩스(Arm Holdings)라고 부르는 게 맞는데, 보통은 줄여서 Arm이라고 부른다. Arm은 Advanced RISC Machines의 약자로 RISC 기반의 고성능 CPU 아키텍처를 개발하기 위해 Acorn Computer, Apple, VLSI Technology 등 세 회사의 합작회사로 탄생했다.

그러나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PC 시장도 새롭게 재편되면서 Arm은 위기에 빠졌고, 1998년에 앞서 말한 세 회사와 관계를 정리하면서 회사 이름도 Advanced RISC Machines로 바꾸고 새로운 쪽으로 사업 방향을 돌리게 된다. RISC 기반의 ARM 아키텍처를 개발하고, 그 IP를 다른 반도체 설계, 제조사에 라이선스로 제공하게 된 것이다. 라이선스를 구매한 회사들은 저마다 커스텀을 더하고 발전시키며 자신들의 반도체를 선보이게 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엄청난 출력, 우수한 변환 효율, 가벼운 무게, 합리적인 가격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소형 발전기를 만드는 A 회사가 있다고 치자. 이 발전기는 순간적인 출력을 높이는 커스텀을 더하면 빔을 발사하는 병기로도 만들 수 있고, 장시간 안정적인 출력을 구현하는 커스텀을 더하면 비행기의 엔진으로 쓸 수 있다. 그리고 출력을 낮추는 대신 변환 효율을 높이는 커스텀을 더해 경제성을 높이면 고층 아파트의 각 가정에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기 역할도 할 수 있다.

Arm은 바로 A 회사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리고 소형 발전기를 병기로 쓸지, 산업용으로 쓸지, 가정용으로 쓸 것인지는 A 회사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은 회사들이 결정한다. 애플, 퀄컴, 삼성전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Arm의 으로부터 라이선스를 구매한 후 커스텀을 더해 자신들의 반도체 상품을 만드는 것이다. Arm의 대표적인 제품군인 ‘Cortex’ 시리즈는 애플의 손을 거쳐 A 시리즈, 퀄컴의 손을 거쳐 스냅드래곤, 삼성전자의 손을 거쳐 엑시노스 등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물론 소형 발전기(아키텍처)만 파는 건 아니다. 발전기를 만드는 재료, 발전기를 조립하는 순서, 발전기의 내열 성능, 재료 구성 등 상세한 기술 사양(명령어 세트)도 라이선스를 통해 제공된다. 전부 반도체 IP에 속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자체 개발 칩과 Arm으로부터 라이선스받은 명령서 세트(자료 출처 : 신한투자증권)

Arm의 위상

시장 조사와 경영 컨설팅을 제공하는 Global Market Insight는 지난 3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반도체 IP 시장은 2023년 기준으로 약 70억 달러, 연평균 성장률 8.5%를 이어가 2032년에는 약 150억 달러에 이른다고 전망했다.

얼핏 보면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물 제품이 오가는 거래액이 아니라 단지 라이선스를 위한 금액이 이 정도라는 건 매우 큰 규모다. CDMA를 비롯해 무선통신 분야에서 무수한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특허 공룡이라 불리는 퀄컴의 2024년 2분기(2024년 1월~3월) 라이언스 매출액은 참고로 약 14.4억 달러였다.

통신 분야는 워낙 시장 규모가 어마어마하기도 하고, 스마트폰에 기기당 부과되는 라이언스 비용은 반도체 라이언스 비용에 비해 커서 반도체 IP 시장과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반도체 IP 시장이 작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퀄컴의 3개월 라이언스 매출액은 약 14.4억 달러(1년 기준으로 약 60억 달러)다.
반도체 IP 시장은 연평균 8.5%씩 급성장이 예상된다(자료 출처 : Global Market Insight)

앞서 소개한 피라미드 그림에서 가장 아래쪽에 표시된 기업들을 포함해 약 10곳이 시장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으며, 이 중에서도 Arm과 Synopsys가 약 60%의 독보적인 점유율을 자랑한다. 특히 CPU, GPU, AP 등을 포함하는 Processor IP 분야에서는 Arm이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출시되고 대중화되면서 반도체 IP 부문에서 Processor IP가 차지하는 비중은 급속히 커졌으며, 현재는 대부분의 반도체 IP를 Processor IP가 차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Arm의 점유율은 전체 반도체 IP 시장의 40%에 이를 정도로 커졌다. 그야말로 최강자인 것이다.

Arm의 위상은 상장 과정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Arm은 작년 9월 14일(미국 시간), 미국 나스닥에 상장됐는데, 공모가 51달러로 상장돼 첫날 25% 폭등한 끝에 63.59달러로 장을 마쳤다. 올 4월에 한 차례 조정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보이며 6월 27일 장 마감 기준으로 166.94달러까지 올랐다. 반도체 IP 시장의 성장 전망이 긍정적이고, 이에 따라 Arm의 기업 가치도 계속 높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상장 이후 현재까지 Arm의 주가 변동 상황. 약 9개월 만에 3배 넘게 올랐다.
Arm 주요 IP의 로열티 비율. 출시된 지 약 30년이 지난 ARM 7에서도 여전히 로열티가 발생한다. 참고로 ARM 7은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보이 어드밴스드, 닌텐도 DS 등에 사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