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산돌, 타입 디자인 컨퍼런스 ‘산돌 사이시옷’ 개최 ①
1984년 국내 최초의 한글디자인 전문회사로 설립되어 폰트 업계를 주도하고 있는 산돌이 폰트 산업의 발전과 상생을 위해 마련한 타입 컨퍼런스 ‘산돌 사이시옷’을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10월 28일 개최했다. 폰트 디자인 현업 실무자부터 지망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업계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이시옷 컨퍼런스는 작년 10월 산돌 사옥에서 열었던 컨퍼런스의 연장선에 있지만, 올해는 장소를 변경하고 규모를 키워 더욱 새롭게 단장했다. 올해의 주제는 ‘일과 삶’으로 5명의 연사가 각기 다른 발표를 통해 인사이트를 공유했다.
‘서체 디자인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첫 순서로 나선 서체 디자이너 이노을 씨(로올타입)는 미술관·출판사·잡지사 등 다양한 직장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영문 서체에 비해 같이 쓸 수 있는 한글 서체가 부족하다고 여겨 직접 서체 디자인에 뛰어든 과거 이력을 소개했다. 그는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왕립예술대학을 졸업한 후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네이버 마루 부리, 더현대 해피니스 산스 등의 프로젝트에 관여했다. 현재는 서체 디자인 스튜디오 로올타입을 세워 독립한 상태이며 한국과 스위스 제네바를 오가며 활동 중이다.
아리온, 아르바나, 기파란 등의 자체 폰트를 클라우드 서비스와 자사 웹사이트에서 판매 중인 그의 서체는 기존 한글 서체와 뚜렷하게 차별화된 획이 특징이며 기계적인 작도보다 ‘손’의 느낌에서 많은 힌트를 얻는 경향이 있다. 함께 일하는 파트너가 라틴 알파벳 디자이너인 만큼 한글과 매칭되는 영문 등의 멀티스크립트(다국어 지원)에도 강한 것이 특징이다.
독립적인 서체 디자인에 뛰어드는 초심자가 겪을 여러 현실적 어려움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개인 디자이너가 만든 폰트의 현실적인 판매 경로가 미흡하다는 것, 경기 불황에 따른 수익 침체로 소비자의 서체 구매가 줄고 경쟁업체가 늘어나며 전체적인 단가가 하락한다는 것, 네트워크가 없이는 외부의 일을 받기 어렵다는 것, 제작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을 주요 어려움으로 꼽았으며 이에 대해 새로운 구독 서비스 참여, 그래픽 디자이너와의 꾸준한 협업, 아카이브가 쌓일 때까지 강의 등 다른 수입원을 최대한 만들면서 버틸 것, 대중은 어차피 크게 주목하고 있지 않으니 마음 편하게 작업할 것 등을 자신만의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그는 “서체 디자인을 하다 보면 현실적인 슬픔이 크지만 작업에서 배우고 느끼는 기쁨도 크다. 희노애락이 있는 서체 디자인의 세계는 디자이너와 사용자 모두가 만들어 간다고 생각한다.”는 말과 함께 세션을 마쳤다.
두 번째 세션은 ‘도안 없는 구슬 꿰기’라는 주제를 제시한 서체 디자이너 이주현 씨(코스모프타입)의 발표로 진행됐다. 그는 디자이너로 총 10년, 폰트 디자인 회사에서 5년 넘게 일하다가 퇴사를 결심한 이야기, 그리고 퇴사 직후에 개인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자신감 하락으로 방황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개인적으로 구상해 온 폰트를 만들고 싶었지만 막상 퇴사한 후 현실적인 수입의 어려움 때문에 폰트 작업이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회사를 떠나고 보니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스템이 익숙하지 않았으며 어려운 점을 동료에게 메신저로 물어보거나 시시콜콜한 티타임 등 보이지 않는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현실을 자각한 후 일단 폰트보다 소위 ‘밥벌이’가 먼저라는 생각에 들어오는 일이라면 거절하지 않고 레터링, 로고 디자인, 외주 폰트 디자인, SNS 담당자, 콘텐츠 에디터 등 다양하게 활동했다. 전시와 레터링 에세이 발간 같은 개인적인 사이드 프로젝트도 병행했다.
그렇게 버티면서 일하다 보니 부정적인 생각은 점차 사라지고 자기 확신과 용기, 지속가능성 등 심리적으로 중요한 보물을 많이 얻게 되었는데 이를 빛나는 구슬에 비유했다. 앞으로도 서체 디자이너로 생활하면서 구슬이 많이 모일 텐데 이를 모두 꿴 최종적인 모습을 속단할 수는 없어도 계속 반짝이는 것들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했다. 작업으로는 한글글꼴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된 본문용 서체 ‘범나비’와 변화무쌍한 획이 특징인 제목용 서체 ‘포치니’, 그리고 현재 운영하는 1인 스튜디오 코스모프타입을 소개했다. 폰트 회사를 나온 서체 디자이너들은 업계의 협소함으로 인해 이직하거나 재입사하지 않고 그대로 전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이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