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시대, 퀄컴은 무엇을 꿈꾸고 계획하는가? 3/3
Part.3 퀄컴의 진짜 목적
세줄 요약
- On-Device를 통해 생성형 AI를 발전시키고, 생성형 AI 진화를 통해 다시 On-Device 사용자 경험을 발전시킨다.
- 사용자 경험을 최우선시하는 크로스 플랫폼 솔루션 Snapdragon Seamless을 제공해 업계의 수평 분업을 촉진한다.
- 퀄컴의 현안은 생태계 구축. 그 실현을 위해 다양한 기업들과 연계를 추진.
On-Device와 생성형 AI의 선순환 구조
최근 2년 사이 급격히 불어닥친 생성형 AI의 열풍은 사용자들이 요구하는 미래의 PC와 스마트폰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버렸다. 전작보다 조금 사양이 높아지고 새로운 기능이 추가된 PC, 스마트폰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형 AI와 조합함으로써 이전까지는 불가능했던 사용자 경험을 제공해주길 바라게 된 것이다.
Snapdragon Summit 2023에서 퀄컴은 이를 위해 첨단 기술을 가진 하드웨어 제조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주었다. 생성형 AI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프로세서(Snapdragon 8 Gen.3와 Snapdragon X Elite)를 소개하고, 이들 프로세서를 이용하면 생성형 AI의 사용자 경험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생성형 AI가 탑재된 기기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주목
2023년에 열린 대형 IT 이벤트의 화두는 누가 뭐래도 ‘생성형 AI’일 것이다. 생성형 AI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큰 주제 아래에서 자사의 제품, 서비스와 연계해 장점을 피력했다. 하지만 Snapdragon Summit 2023에서 퀄컴의 크리스티아노 아몬 CEO는 기조연설에서 ‘생성형 AI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가 아니라 ‘생성형 AI가 기기를 어떻게 바꿀까, 그리고 그 기기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언급했다.
기기 안에 생성형 AI를 넣기 위해(On-Device), 다시 말해 빠르게 연산하고 즉각적으로 해답을 제시해주는 생성형 AI를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 기기는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 그리고 그 결과 어떤 일이 가능해지며 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생성형 AI는 또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아몬 CEO의 언급은 곱씹을 가치가 있다.
생성형 AI’라고 쓰긴 했지만, 딱히 ‘생성형’ AI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이미지 인식, 음성 인식 등 현재 이용할 수 있는 AI를 모두 포함한다.
지금까지 이미지와 음성은 인간에게 있어 ‘이해하기는 쉽지만 재이용하기엔 번거로운 정보’였다. 이미지를 재이용하려면 직접 그리거나 말로 자세하게 설명해야 했고, 음성을 재이용하려면 해당 언어에 대한 지식 또는 내용을 다시 자신의 음성으로 반복해야 하는 등 복잡한 과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AI가 이미지와 음성을 인식할 수 있게 되고, 그 정보를 생성형 AI가 처리하게 되면서 ‘요약’, ‘답변’, ‘예측’ 등이 가능해졌다. 통화 시 상대방이 말한 내용을 자동으로 요약해주거나 기사의 텍스트 정보를 간단하게 몇 줄로 요약해주는 기능은 이제 흔히 찾아볼 수 있으며,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질문에 대답해주는 기능은 ‘가능’의 범주를 넘어 매우 정교, 정확해졌다.
크리스티아노 아몬 CEO는 이런 변화를 모바일 컴퓨팅의 다음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애플리케이션 기반의 스마트폰이라는 기존의 경로를 벗어나 스마트폰이긴 하지만 다른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기로 바뀌어야 한다는 게 아몬 CEO의 생각이다.
클라우드 연산보다 기기 내 연산이 생성형 AI 활용에 적합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연산을 모두 클라우드를 통해 해결하기에는 난관이 많다. 주변 통신 환경에 따라 명령을 입력한 후 결과가 도출되기까지 속도가 크게 느려질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비용도 발생한다. 의료정보, 신용정보 등 민감한 정보가 클라우드 상에 계속 노출되는 건 개인정보보호 면에서도 위험 부담이 크다.
그래서 퀄컴은 On-Device에 착안했다. 기기 내에서(On-Device) AI를 작동시킨다는 개념이다. 데이터를 클라우드 상으로 내보내 처리하지 않고 기기 내에서 처리하면 그만큼 응답이 빨라지고 개인정보도 보호할 수 있다. 물론 기기가 생성형 AI를 원활하게 작동시킬 수 있을 정도로 사양이 높아야 한다.
하지만 이는 사양만 충분하다면 On-Device 방식이 클라우드를 거쳐 생성형 AI를 이용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우위에 설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게 가능해진다면 스마트폰이나 PC, 태블릿 등은 기존의 역할을 벗어나 모바일 컴퓨팅의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이는 다시 생성형 AI의 활용성, 가능성을 더욱 끌어올리는 ‘선순환’ 구조가 완성될 것이라고 퀄컴은 설명한다.
On-Device 개념 자체가 새로운 건 아니다. 요 몇 년 동안은 스마트폰용 프로세서에 AI 연산을 보좌하는 ‘NPU’(Neural Processing Unit)가 탑재되고 있다. 대부분은 이미지나 사진 처리에 사용되지만, 일반적인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게끔 범용성이 확대되는 추세다. 얼마 전 구글이 발표한 「Pixel 8」에서 그런 설계 사상을 확인할 수 있다.
모바일뿐만 아니라 PC 분야에서도 이런 움직임은 나타난다. 인텔, AMD 모두 NPU를 탑재하는 추세이며, 퀄컴 역시 Snapdragon Summit 2023에서 공개한 PC용 SoC인 Snapdragon X Elite를 통해 그런 흐름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NPU 단독으로 처리하기 힘든 부분은 CPU와 GPU를 더해 효과적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클라우드와 로컬 처리를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On-Device를 기반으로 하는 생성형 AI 시대의 기기를 제시하고 있다.
그 결과, 기기 내에서도 고성능 생성형 AI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최적화를 거치면 이미지 생성형 AI인 ‘Stable Diffusion’의 처리 속도를 1초 이하로 단축할 수 있다고 한다. 경쟁 프로세서와 비교해 20배 이상 빠른 속도다. 인식, 영상 처리는 어느 정도로 개선될지 궁금해진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아무리 하드웨어의 성능을 훌륭히 만들어도,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없다면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그래서 퀄컴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많은 플랫포머와 손잡고 On-Device 환경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선보이고자 노력한다. IT 산업계 내의 수평 분업을 촉진하고, 퀄컴은 반도체 부분을 담당한다는 게 퀄컴의 속내다.
스냅드래곤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Snapdragon Seamless
Snapdragon Summit 2023에서 퀄컴이 발표한 내용 중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이 바로 ‘Snapdragon Seamless’ 기능이다. 이 기능은 기기에 탑재된 OS가 서로 다르더라도 Snapdragon을 탑재하고 있다면 연결 중인 주변기기와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는 크로스 플랫폼 기술로 이르면 2023년 중에 지원 기기가 등장할 예정이다.
이 기능이 적용되면 SoC에 Snapdragon이 탑재된 PC와 스마트폰 그리고 태블릿에 연결된 마우스, 키보드, 이어폰 등의 주변기기는 스마트폰에서 PC로, 또는 PC에서 태블릿 등으로 연결이 바뀌어도 지연 없이 작동한다. 파일이나 창의 끌어놓기(drag & drop)도 가능해진다. 마치 PC와 스마트폰, 태블릿이 하나의 기기처럼 연계되는 것이다.
Snapdragon Seamless는 Snapdragon Summit 2023에서 발표된 Snapdragon 8 Gen.3, Snapdragon X Elite, 그리고 웨어러블/히어러블 기기용 SoC에 먼저 탑재된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해 구글, 샤오미, 레노버, 오포, 에이수스 등도 퀄컴과의 연계를 통해 Snapdragon Seamless에 대응하는 기기를 출시할 계획이다. 샤오미처럼 이미 대응 기기를 출시한 회사도 있다.
퀄컴은 Snapdragon Seamless에 대해 “OS, 기기, OEM 간의 장벽은 Snapdragon Seamless를 통해 허물어질 것이며 진정으로 사용자를 최우선시하는 유일한 크로스 플랫폼 솔루션”이라고 설명했다.
퀄컴의 생태계 구축 선언
사실 퀄컴의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최근 발표한 2023년 4분기(7월~9월) 일반회계기준(GAAT) 자료에 따르면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4%, 영업이익은 62%나 줄어들었다. 스마트폰 사업 분야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7% 줄어들었다. 10월에는 수익성 보전을 위해 비용 삭감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 최근 캘리포니아주 고용개발국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12월까지 캘리포니아 지사 직원 1258명을 해고할 예정이라고 한다.
실적 회복 전망 역시 부정적이다. 애플이 모바일용 SoC로 자사의 칩을 쓰고 있어서 현재 가장 큰 고객은 삼성전자인데, 삼성전자는 내년부터 독자 개발 SoC인 ‘엑시노스’의 비중을 늘릴 계획이다. 세계 최대의 스마트폰 시장인 중국에서는 대만의 펩리스 반도체 회사인 미디어텍과 치열하게 AP 점유율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퀄컴이 내놓을 수 있는 해결책은 무엇일까? Snapdragon Summit 2023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결론으로 귀결된다. 바로 생태계 구축이다. On-Device를 통한 생성형 AI의 선순환 구조와 Snapdragon Seamless를 통한 스냅드래곤의 당위성 획득은 퀄컴의 ‘최종 목적’이 아니라 생태계 구축을 위한 ‘수단’인 것이다.
생성형 AI에 최적화된 프로세서 보급, 사용자 편의를 위한 크로스 플랫폼 솔루션 제공을 기반으로 퀄컴의 생태계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며 기업의 미래 먹거리로 삼는다는 전략이다. 애플이 구축한 생태계를 보면 그 결과가 얼마나 달콤한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생태계 구축이 쉽진 않다. 인텔이 자사의 CPU를 장착한 PC, 노트북을 통해 ‘Intel Inside’를 추진했지만, 제조사와의 공동 마케팅 정도에 그쳤고, 삼성전자는 ‘SmartThings’를 통해 기기 구분 없이 사용자 경험의 공유를 꾀하고 있지만, 삼성전자 제품이 아닌 기기에서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거의 유일한 성공 사례가 애플이다.
그래서 퀄컴은 다양한 연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PC 분야는 마이크로소프트, 모바일 OS 분야는 구글과 협력을 강화했다. 퀄컴의 주 분야인 모바일용 프로세서는 중국 업체들과의 긴밀한 관계가 눈에 띈다. Snapdragon Seamless 생태계 협업을 밝힌 7개 회사 중에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을 뺀 5개 회사가 모두 중국계 회사다(타이완 포함).
중국계 회사의 적극적인 참여는 양쪽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퀄컴으로서는 중국 시장 진출과 삼성전자를 대체할 고객사 확보가 필요하고, 중국계 회사로서는 중저가 제품 위주의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의 프리미엄 제품 시장에서의 입지 확대와 미국의 대중국 규제에서 벗어나려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퀄컴의 생태계 구축이 어떤 성과를 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번 Snapdragon Summit 2023을 통해 퀄컴이 무엇을 꿈꾸고 계획하는지는 분명해졌다. 모바일, PC용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생태계를 구축한 후 웨어러블, 히어러블 기기, 증강/가상현실 기기, 자동차용 프로세서로까지 확대를 꿈꾸는 퀄컴이 다음으로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