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초창기 비운의 기종, 애플 Ⅲ와 리사

PC 초창기 비운의 기종, 애플 Ⅲ와 리사

회로 기판에 불과한 애플 I을 팔던 청년 사업가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후속작 애플 Ⅱ의 성공으로 인해 갑자기 세계가 주목하는 중요 인물로 부상했다. 당시엔 아무도 몰랐지만, 애플 Ⅱ가 인기 절정에 오른 1980년대 초는 개인용 컴퓨터(PC)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시장을 지켜보던 거대기업 IBM이 첫 번째 PC인 5150을 내놓았고, 공개 아키텍처를 표방함으로써 여러 제조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하여 경쟁이 불붙기 시작한 것이다. 잭 트라미엘이 이끄는 코모도어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애플은 이 중요한 시기에 선점해 둔 시장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그것은 야심 차게 설계된 후속작 애플 Ⅲ와 리사의 연이은 실패 때문이다. 1984년 매킨토시의 출시로 이를 약간 만회하긴 했지만 이미 시장은 IBM 호환기종 위주로 재편되고 있었다. 이때 굳어진 구도는 지금까지 크게 바뀌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다.

애플 Ⅱ가 모습을 드러낸 1977년경 PC는 소수의 마니아와 게이머를 위한 취미 도구의 성격이 강했다. 게임을 제외하면 실생활에 쓸모 있는 소프트웨어는 없다시피 했다. 그러나 1979년 최초의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 비지캘크(VisiCalC)가 등장한 이후 사무 현장에서 PC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종이와 펜, 타자기가 주류였던 책상은 점점 애플 Ⅱ가 위주로 바뀌어 갔다. 이에 고무된 애플은 Ⅱ의 후속작으로 아예 사무용으로 대량 사용될 수 있는 전문가용 PC를 구상했다.

1980년 5월 선보인 애플 Ⅲ는 그 프로젝트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라이벌의 등장 속에서 쫓기듯 만들어진 애플 Ⅲ는 하드웨어에 근본적인 결함을 갖고 태어났다. 작은 본체 내부에 빽빽하게 들어찬 부품으로 인해 많은 열이 발생했는데, 발열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었다. 시끄러운 냉각팬을 혐오하는 스티브 잡스가 팬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발상은 좋았지만 그 대안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애플 Ⅲ는 치명적인 안정성 문제를 자주 일으켰다. 다른 부분에 대한 품질 테스트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1984년 단종된 애플 Ⅲ 시리즈는 15년간 생산된 애플 Ⅱ 시리즈에 비하면 엄청나게 짧은 기간 만들어졌다.

애플은 상황을 반전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러려면 경쟁 제품과 완전히 다른 혁신적인 컴퓨터가 필요했다. 1983년 애플 최초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를 얹고 출시된 리사가 그것이다. 기존 작명과 동떨어진 듯한 리사(Lisa)라는 이름은 스티브 잡스 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GUI로 손쉽게 조작할 수 있는 리사는 명령어를 일일이 타이핑해야 하는 컴퓨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용자 친화적인 환경을 자랑했다. 오늘날 컴퓨터 조작의 상식으로 통하는 마우스도 리사와 함께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번에는 혁신적인 개념을 받쳐주지 못하는 빈약한 하드웨어 사양이 문제가 됐다. 모토로라 68000을 메인 프로세서로 쓰고 최대 2MB 램과 5MB 외장 하드 드라이브를 지닌 리사의 스펙은 나쁜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리사에 실린 기능은 그 이상을 필요로 했다. 당연히 작동이 원활하지 못했다.

가격도 문제였다. 웬만한 승용차보다 비싼 9,995달러라는 가격은 아무리 혁신적이라 해도 좋게 봐주기 힘들다. 여기에 리사의 경쟁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킨 변수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애플 매킨토시의 등장이었다. 리사에 비해 훨씬 저렴하면서도 비슷한 스펙으로 무장한 매킨토시는 더욱 개선된 GUI까지 채택했다. 결론은 뻔했고, 소위 '팀킬’이 일어났다. 이는 당시 애플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이 정상적이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애플은 리사의 가격을 대폭 인하하고 마지막에는 매킨토시 XL로 이름을 바꾸는 등 몸부림쳤지만 예정된 끝을 막을 수는 없었다. 팔리지 못한 악성 재고가 아타리 게임팩처럼 매장됨으로써 리사의 짧은 역사도 막을 내렸다. 오늘날 리사는 PC 초기의 중요 유산 중 하나로 통하며 여러 선진적 개념들이 재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꼭 필요한 때 필요한 순간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두 모델의 실패와 매킨토시의 부진은 1985년 스티브 잡스가 자신이 고용한 CEO 존 스컬리에 의해 애플에서 쫓겨나는 한 원인이 되었다. 이런저런 내홍 속에서 회사의 시장점유율은 계속 줄어들었다. 이로써 애플은 PC 대중화의 선두주자라는 타이틀을 상실하고 한동안 ‘그래픽 작업에 특화된 PC'라는 틈새시장을 바탕으로 연명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