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매체 변천사(4): 가장 대중적인 힘, 카세트 테이프
‘카세트‘라는 약칭으로 더 많이 불리는 카세트 테이프는 누구나 쉽게 구매하고 사용할 수 있어 음악의 대중화에 공헌한, 음반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매체다. 네덜란드 필립스가 개발한 카세트 테이프의 시작은 CD처럼 LP를 대체할 저장장치 개발 프로젝트였다. 개발자인 루 오텐스는 너무 커서 사용이 불편한 LP판과 릴 테이프 대신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음원 저장매체를 추구했다.
작은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자기 테이프와 릴을 내장하여 신호의 저장과 재생을 행하는 카세트 테이프는 1963년 베를린 라디오 전자박람회에서 발표된 후 간편함과 휴대성을 무기 삼아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못해도 전 세계 1,000억 개 이상 판매된 것으로 추산될 정도다. 과거 국내에서도 생산하는 곳이 많았다. 카세트 테이프와 비디오 테이프 등 아날로그 매체 제조를 주력 사업으로 했던 SKC와 새한미디어가 대표적이다. 특히 새한미디어는 시대의 흐름에 대응하지 못해 쓰러지긴 했지만 한때 카세트비디오・테이프 생산 1위에 오르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카세트 테이프의 히트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일본 파트너 소니다. 소니가 1979년 출시한 첫 워크맨(TPS-L2)은 포터블(portable)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혁명적 기기였다. 카세트 테이프와 워크맨의 만남은 그 전까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걸어 다니면서 음악을 듣는 행위를 가능케 했다. 둘의 조합은 1990년대 후반 MP3 플레이어가 출현하기 전까지 세계의 거리를 지배하다시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텐스는 필립스가 워크맨을 만들어 내지 못한 것을 가장 후회하는 일로 꼽았다. 협력 관계면서도 엄연한 라이벌 회사였던 엔지니어 간의 자존심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주로 음반이나 어학 콘텐츠 등 소리를 저장하는 용도로 쓰인 카세트 테이프는 개인용 컴퓨터(PC) 초창기의 저장매체로 사용되기도 했다. 프로그램 용량이 지금보다 비교도 안 될 만큼 적어 가능했던 것이다. 1980년대 초반 발매된 PC 본체의 한쪽 부분에 카세트 테이프가 들어갈 만한 공간이 있고 재생/정지 버튼이 있다면 생각하는 ‘그’ 공간이 맞다. 주로 MSX 규격 컴퓨터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동시대 플로피 디스크에 비해서도 턱없이 적은 용량이지만, 최대 용량 16KB가량 되는 게임을 저장한 후 실행할 수 있어 나름의 역할은 했다.
카세트 테이프의 가장 큰 단점은 내구성이다. 조금만 자주 들으면 테이프가 늘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장기 보존성도 떨어진다. 그러나 다른 매체로 대체할 수 없는 저렴한 가격과 편리함을 지닌 카세트 테이프는 LP의 자리를 CD가 사실상 대체한 후에도,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의 시장을 타깃으로 명맥을 유지했다. CD가 나온 후에도 한참 버틴 카세트 테이프의 시대를 끝낸 것은 디지털 음원이었다. 워크맨의 시대도 함께 저물고 개인용 음악 재생기기의 대세는 애플 아이팟으로 대표되는 MP3플레이어로 넘어갔다. 한편 ‘카팩‘이라는 물건도 있었다. 카세트 테이프는 없는데 자동차 안에서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등장한 카팩은 자동차 오디오의 카세트 슬롯에 테이프 모양 장치를 꽂고 여기 연결된 외부 선으로 MP3플레이어를 연결해 음악을 듣는 방식이다. 그보다 편리한 무선 카팩도 존재했는데 모두 과도기의 흔적이다.
디지털 음원과 함께 과거의 유산으로 사라지는가 싶었던 카세트 테이프는 LP처럼 아날로그 바람이 불면서 주목받는 매체로 조용히 부상 중이다. LP는 제대로 갖추려면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러나 카세트 테이프는 지금도 재생기기와 테이프를 비교적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아날로그 감각은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지갑을 열게 만든다. 카세트 테이프를 구할 수 있는 오프라인 상점도 수는 적지만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유명 뮤지션의 테이프 발매본은 생각보다 고가에 거래되기도 한다.
네이버 카페 등의 인터넷 모임에는 소니, 파나소닉, 아이와, 마이마이 등의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관리하고 자가수리하는 마니아도 넘쳐난다. 고장을 일으키는 부위가 대부분 정해져 있다 보니 가능한 현상이지만, 아직 생산되는 대체 부품도 있으면 그것을 쓰고 없는 부품은 직접 만들어 가며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모이면 탱크라도 만들어 낼 수 있다던 청계천 세운상가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생전 ‘카세트 테이프의 아버지’로 불렸던 루 오텐스는 2021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음악의 대중화라는 업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