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페셔널의 사운드를 느낄 수 있는 인이어 이어폰 L-Acoustics Contour XO

프로페셔널의 사운드를 느낄 수 있는 인이어 이어폰 L-Acoustics Contour XO

가격

1,350EUR

성능

★★★★★

구매가치

★★★★★

성향

밸런스


이런 사람에게 추천

라이브 사운드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인이어 이어폰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궁금하면 구매!


좋은 점

  • 스피커와 가장 흡사한 인이어 이어폰.
  • 현존하는 다중BA 드라이버 이어폰 중 가장 뛰어난 위상 반응.
  • 강력한 자체 EQ 보정 기능

나쁜 점

  • 한국 정식 수입처는 존재하지만 실 구매가 어렵다(그래서 유로화로 표기).
  • 착용감이 좋지 않다.

지금이야 완전 밀폐된 형태로 귀 안에 깊숙히 삽입하는 이어폰이 거의 표준처럼 여겨지지만 처음 인이어 이어폰의 시작은 ‘무대 위에서 아티스트의 원활한 모니터링’을 위해서 개발된 것이다. 이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제품이 아마도 ‘세계 최초의 인이어 이어폰’이라고 여겨지는 Shure E1일 것이다.
제품을 보면 알겠지만 심미적인 부분은 조금도 고려되지 않았고 따라서 정말 무대 위 아티스트를 위한 ‘장비’의 개념에 가까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사운드 성향도 무대 위에서의 퍼포먼스에 최적화된 만큼 보컬 모니터링, 그리고 리듬 트래킹을 위한 스네어와 킥 모니터링이 잘 들리는 중저역 및 중역에 집중되어 있어서 재생 대역도 다소 좁았다. 물론 이러한 소리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말이다.
또 다른 인이어 이어폰 개발의 한 축은 바로 Diffuse Field 타겟이다. ‘평탄한 스피커를 최대한 모사’ 하겠다는 목표로 만들어진 이 주파수 커브는 물론 그 취지는 훌륭했지만 실제 청취시 많은 사람들이 ‘실제 스피커보다 저음이 적게 느껴진다’고 리포트하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Harman 타겟이다. 이는 세계 굴지의 음향 회사인 Harman International이 사용자들의 일반적인 선호도를 고려하여 만들어낸 주파수 커브다.

인이어 이어폰을 만드는데 있어서 이렇게 다양한 콘셉트 및 목표가 있기 때문에 스피커와는 달리 인이어 이어폰들은 굉장히 다양한 커브 밸런스를 갖게 된다. 여기에는 또 상세히 비집고 들어가면 굉장히 할 이야기들이 많으니 대충 정리하자면 ‘인이어 이어폰의 구현 목표는 매우 다양하며 이를 잘 알고 선택해야 실패를 하지 않을 수 있다’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이번에 소개하는 L-Acoustics Contour XO는 아마도 한국 시장에 풀리게 되면 200만원대 중반 이상의 가격이 예상되는 초고가 이어폰이다. 안타깝게도 L-Acoustics의 수입사인 (주)클라우시스는 이 제품을 일반 컨슈머용이 아닌, 프로페셔널용 장비로 분류하여 한국의 리테일 시장에 풀지 않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한화로 유통 가격을 적어놓지 못함에 대해 독자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올리는 바이다.
어쨌든 처음 주제로 넘어가서 이 이어폰이 구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 고가의 이어폰이 지향하는 바는 특이하다. 바로 ‘라이브용 투어링 스피커’이다.

크로스오버 회로와 전용 7핀 커넥터를 통해 10개의 드라이버가 3웨이로 각각 구동되는 방식이다.

L-Acoustics가 이어폰을 만든다고?

많은 이어폰/헤드폰 마니아들에게 L-Acoustics는 매우 생소한 브랜드일 것이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프랑스에 소재한 이 회사는 라이브용 투어링 스피커를 전문으로 제조하고 있으며 고급 상업용 공간 및 슈퍼-리치 고객들을 위한 인스톨 전용 제품도 일부 생산하고 있다.
아마도 여러분이 라이브 콘서트, 그것도 최고의 아티스트들만 찾아다니는 콘서트 마니아라면 L-Acoustics의 사운드를 이미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이 분야에서는 오래 전부터 세계 최고의 자리를 구가하고 있으며 대형 라이브용 스피커 분야에서 늘 혁신을 주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들이 내놓은 최초의 이어폰인 Contour XO는 고가의 커스텀 인이어로 유명한 JH Audio와의 합작품이긴 하지만 L-Acoustics만의 음향적 노하우와 함께 라이브 사운드 엔지니어들에게 필요한 기능들, 그리고 라이브용 대형 투어링 스피커에서 구현되는 바로 그 사운드와 최대한 흡사한 주파수 커브로 인해 시장에서 독보적인 유니크함과 높은 구매 가치를 자랑하는 이어폰이 되었다.

L-Acoustics 의 창립자이자 대표인 Christian Heil(좌), 그리고 JH Audio 의 창립자이자 대표인 Jerry Harvey(우).

다중 BA 드라이버에서 이뤄낸 위상 일치

음향 기술이나 이론에 소양이 없는 독자들에게는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는 이야기겠지만 ‘음원이 많으면 음질 왜곡이 생긴다’는 것은 법칙에 가깝다. 스피커에서는 물리적, 기술적 이유 때문에 저음과 고음, 혹은 중음까지 분리하여 별도의 드라이버로 재생하는 2웨이나 3웨이 방식이 보편적이지만 이어폰 및 헤드폰에서는 오랫동안 단일 드라이버 방식이 사랑받아온 이유다. 실제로 많은 초고가 이어폰들이 다중 BA(Balanced Armature) 드라이버 방식을 사용하지만 여전히 1개나 혹은 2개, 3개 정도의 드라이버를 가진 제품들이 실 성능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엄지손가락보다도 작은 Contour XO에 적용된 방식은 무려 10개의 BA 드라이버를 3웨이로 탑재한 것이다. 좀 더 살펴보면 4개의 저역 드라이버, 2개의 중역 드라이버, 4개의 고역 드라이버가 조합되어 10Hz~20kHz에 달하는 대역을 표현해낸다.
이렇게 드라이버가 많아지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위상 왜곡 문제가 생기는데, 사실 인이어 제품에서 이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할 방법이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실제로 많은 프리미엄 BA 드라이버 제품을 실제로 들어보면 분명히 표현하는 대역은 엄청나게 넓고 표현력도 디테일하며 섬세한 음을 들려주는 반면, 지나치게 산만하면서도 뭔가 뚜렷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L-Acoustics는 전 세계에서 위상 왜곡을 가장 잘 다루는 회사답게 이 문제를 자사가 자랑하는 WST(Wavefront Sculpture Technology)를 통해 멋지게 해결했다. 또한 필터링 및 위상정렬 문제는 전용 7핀 커넥터와 패시브 필터를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했다. 현재 출시된 다중BA 인이어 제품들 중 이 정도로 적극적이면서 완벽하게 위상 왜곡에 대한 대처를 해낸 제품은 두 배나 더 비싼 제품 중에서도 없다.
실제로 제품을 보면 케이블 중간에 새끼손가락 한 마디보다 작은 뭔가가 있다. 이 조그만 장비(?)는 LF의 양을 조절하는 일종의 EQ 역할을 함과 동시에 7핀의 커넥터를 통해 3웨이 드라이버 각각을 구동하는 크로스오버 프로세서의 역할을 겸한다. 아마 이 제품이야말로 제대로 된 크로스오버 필터가 갖춰진 다중 드라이버 이어폰이 아닐까 싶다.

단출하지만 고급스러운 구성

이제 많은 음향 엔지니어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프리미엄 다중 BA 이어폰 시장의 형성 가격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필자의 입장에서 합리적이라고 느껴졌던 경우라면 중국산 제조사가 자사의 자체 브랜드를 걸고 저렴하면서도 꽤 괜찮은 품질로 제조한 소수의 경우밖에 없었다. 좋게 말하면 시장이 크지 않지만 소비자들의 기대치가 높아 프리미엄 제품 위주로 형성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거품이 낀 시장이다.
그런데 이 제품의 가격은 L-Acoustics라서 ‘이 정도 가격을 할 것’이라는 우려를 박살내는 수준이다. 사실, 필자는 이 제품의 구성과 스펙, 특히 별도의 크로스오버 회로를 구성하여 3웨이로 구동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가격보다 대략 두 배 정도를 예상했었다. 물론 일반적인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생각해본다면 여전히 ‘헉’ 소리가 나는 가격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크지 않은 박스 포장을 열면 알루미늄 케이스가 보인다. 마치 캔처럼 보이긴 하는데, 실제로 깡통 캔은 아니고 꽤나 묵직하고 두께를 자랑하는 그런 케이스이다. 제품 보호에는 확실히 탁월하겠지만, 이 제품이 프로페셔널 음향 엔지니어나 뮤지션에게도 각광받을 제품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좀 더 휴대가 편한 파우치 정도는 동봉해도 좋았을 것 같다. 물론 이 케이스는 Audiophile 들에게는 고급스러움으로 각광받을테지만 말이다.
그 외에 3종의 컴플라이 팁, 그리고 3종의 실리콘 팁이 동봉되며, 베이스를 조절하기 위한 미니 드라이버와 클리닝 툴 킷이 함께 제공된다.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연장 케이블이라든가, 1/4인치 TRS 변환젠더 등이 함께 제공되지 않아 약간 아쉽긴 하지만, 큰 결점은 아니다.

제 성능을 끌어내기 위한 준비-양질의 헤드폰 앰프

처음 듣자마자 감지된 것은 약간의 화이트노이즈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제품의 임피던스는 8Ω에 불과하다. 흔히 임피던스가 낮다고 칭해지는 제품들보다 1/2~1/4 수준에 이른다. 게다가 감도는 116dB/1mW의 미친듯한 수치를 자랑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중 BA 제품들이 대다수 이런 특성들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제품을 제대로 울리려면 정말 좋은 헤드폰 앰프가 있어야 한다. 이는 600Ω짜리 하이-임피던스형 레퍼런스 헤드폰들이 좋은 헤드폰 앰프를 요구하는 것과는 조금 맥락이 다르다. 하이-임피던스 헤드폰의 경우에는 제대로 된 구동을 위해서는 출력 볼티지가 최소한 2Vrms, 최대 4~5Vrms는 되어야 여유있게 구동이 가능하다면, Contour XO같은 타입의 제품은 구동을 위해 높은 출력 볼티지는 필요가 없지만 자체 노이즈가 극도로 낮아야 하며 되도록 낮은 출력 임피던스를 갖춰 어떠 인덕턴스나 커패시턴스 상황에서도 왜곡 없이 일관된 성능을 내주는 고성능 헤드폰 앰프가 필요하다. 전자는 말하자면 양(量)에 관한 것이라면, 후자는 질(質)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이 제품을 구매하면서 되도록이면 섬세한 고품질의 헤드폰 앰프를 함께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필자가 추천하는 자체 노이즈 스펙은 1uVrms, 혹은 그 이하에 준하는 값을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압도적인 대역폭과 스테이징, 그리고 자연스러움

귀에 걸고 음악을 듣자마자 느낀 것은 ‘위화감 없는 스피커’와 같은 결이다. 일반적으로 다중BA 드라이버 이어폰은 처음 귀에 걸었을 때 굉장히 넓은 대역폭과 스테이징으로 화려하게 귀를 사로잡으면서도 뭔가 알수없는 위화감을 준다. 대개 이 위화감의 정체는 위상 왜곡으로 인한 뿌연 느낌이다.
워낙 표현 대역이 넓으니 명료하게 느껴지다가도 특정 대역이 마치 노치필터를 쓴 것처럼 비게 되고, 그래서 여러모로 합이 잘 안맞는 오케스트라처럼 정신없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Contour XO의 놀라운 점은 압도적인 대역폭과 스테이징을 실현하면서도 이런 류의 왜곡이 전혀 없이 자연스러움을 전달한다.
솔직히 말해서 필자는 다중 BA 이어폰의 마니아는 아니다. 전반적으로 ‘잘 설계되고 만들어진’ 다이나믹 드라이버 이어폰이 종합적으로는 더 우수한 성능을 낸다고 믿는 편이었다. 하지만 Contour XO는 이 기준에서 예외가 되어도 좋을 것 같다.
LF 컨투어를 가운데 둔 후 사운드 느낌을 좀 더 설명하자면, 일반적인 인이어 제품보다는 굉장히 실제 공연장 스피커와 같은 느낌을 준다. 그야말로 L-Acoustics 다운 튜닝이요 사운드 설정이라 하겠다. 저음의 질감이나 중역대의 표현력이 굉장히 자연스러우며 고역은 끝없이 뻗어나가지만 결코 자극적이지 않다. 전반적으로 평탄한 특성을 보이긴 하지만 저음과 고음쪽에 약간 더 무게감을 준 느낌으로 인해 내밀한 느낌의 곡보다는 라이브 공연 상황에서 더욱 강한 모습을 보인다. 악기로 말하자면, 보컬보다는 다른 악기나 배경음을 좀 더 잘 표현하는 모양새다.
많은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LF 컨투어 노브일텐데, 우선 조절 범위는 0~+15dB에 달한다. 그러니까 노브를 중간쯤에 뒀다면 5-8dB 정도 부스트된 모양새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청취해보면 중간 쯤에 둔 것이 필자에게는 가장 자연스럽게 들린다.
전반적인 대역폭은 서브우퍼와 비슷하지만, 약간 더 높은 대역까지 커버하는 느낌으로 크로스오버 포인트는 약 200Hz부근에서 설정된 것 같다. Q는 상당히 낮은 값으로 컨투어 조정시 넓은 대역이 움직이는 느낌이다. 당연히 인이어 제품은 스피커와는 다르기 때문에 필터 차수를 높게 설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고 말이다.

Immersive Sound 시대에 걸맞은 이어폰

L-Acoustics는 몇 년전 L-ISA라고 하는 라이브용 Immersive 프로세서를 출시하면서 라이브 환경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물론 많은 경쟁사들이 이 분야에 도전하고 있지만 L-ISA는 시장에서 거의 유일하게 성공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사용 사례를 갖고 있는 거의 유일한 라이브용 Immersive Sound 솔루션이다.
L-Acoustics가 스피커와 가장 흡사한 정교한 고가의 이어폰을 만들어낸 것은 단순히 컨슈머 시장에 침투하고자 함이 아닌, 3차원 Immersive 사운드를 HRTF 내지는 HRIR 기술을 이용해서 이어폰 환경에서 모니터링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장비를 제공하고자 하는 이유가 숨어있다.
이는 반대로 생각해보면 Contour XO가 실제로 스피커를 재현하는데 있어서 꽤 믿을만한 특성을 갖고 있다고 봐도 되는 것이며, 이에 따라 기존의 인이어와는 달리 라이브용 스피커의 커브 밸런스를 선호하는 유저들에게도 좋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이렇게 유니크하고 멋진 이어폰을 일반 유저들이 쉽게 구매하기 어렵다는 것이지만 향후 수입사 측에서 좀 더 유연한 판매정책을 가져보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