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매체 변천사(1): 휴대용 디스크의 개념을 처음 제시한 ‘플로피 디스크’
PC를 제대로 쓰려면 데이터를 옮겨 다니며 사용할 수 있는 휴대 가능한 저장매체가 필요하다. 저장매체의 존재는 사적인 파일 전송부터 소프트웨어 판매 등의 상업적인 면까지 모두 유용하다. 가벼운 플라스틱 몸체 안에 내장된 자성체 원판을 회전시켜 데이터를 읽고 쓰는 플로피 디스크는 개인용 컴퓨터(PC) 초창기에 저장매체의 대명사로 불렸던 물건이다.
내부의 헤드와 자성체 원판이 물리적으로 맞닿는 구조로 만들어져 수명이 길지는 않았지만 특유의 편리성으로 인해 20년 넘는 오랜 기간 사용됐다. 오래된 데스크톱을 보면 CD 드라이브는 아니면서도 가로로 얇고 넓은 삽입구가 있는 드라이브가 눈에 띌 것이다. 혹은 윈도 컴퓨터의 드라이브 식별 문자가 왜 C부터 시작하는지 궁금했던 적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둘 다 플로피 디스크가 남긴 흔적이다.
플로피 디스크의 시초는 1971년 IBM이 자기 테이프를 대체할 용도로 개발한 8인치 플로피 디스크다. 정사각형 모양에 가운데 원형 구멍이 뚫린, LP판에 버금갈 만큼 거대한 외형을 보면 왜 이 제품에 팔랑거린다는 뜻의 ‘플로피’(floppy)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천공 카드와 자기 테이프에 비해 획기적이었던 이 매체의 최초 용량은 80KB였다.
일단 유용성이 증명된 플로피 디스크는 크기는 줄이고 용량은 늘리는 쪽으로 계속 진화한다. 8인치보다 작은 최초의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인 슈거트 SA400이 1976년 등장했다. 출시 당시의 용량은 110KB였고 꾸준한 개량 끝에 최고 1.2MB에 도달했다. 1977년 데뷔한 애플 Ⅱ 관련 사진에 항상 등장하는 disk Ⅱ 드라이브가 이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읽는 장치다. 마지막까지 쓰여 PC 사용자에게 가장 익숙한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는 1981년 소니에서 최초로 등장했다. 컴퓨터의 램조차 KB 단위였던 당시에는 디스켓이 1987년 도달한 최대 용량 1.44MB가 결코 작은 용량이 아니었다. 저장매체를 주력으로 만들었던 한국의 SKC와 미국 이메이션 등이 유명 제조사다.
플로피 디스크는 1990년대까지 활발하게 쓰였다. 1998년만 해도 세계적으로 20억 장에 달하는 플로피 디스크가 판매됐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용량과 안정성 문제로 다른 미디어에 밀려 도태되기에 이른다. 하드웨어에서 가능한 기술을 최대로 뽑아낸 플로피 디스크의 용량 한계는 명확했던 반면 컴팩트 디스크(CD)는 700MB에 달하는 압도적인 용량을 자랑했기에 애초에 상대가 되지 못했다. 15MB 용량의 파일 하나를 복사하려 해도 10장 넘는 디스크가 필요했으니 말이다. 플로피 디스크도 꾸준한 기술 개발을 통해 마지막에는 200MB에 달할 정도로 용량을 높였지만 결국 역부족이었다. 정전기에 데이터가 쉽게 훼손되는 특성도 롱런에 치명타로 작용했다. 그 시절 플로피 디스크를 주로 썼던 사용자들은 데이터가 모두 날아간 기억을 한 번쯤은 갖고 있다.
3.5인치 플로피 디스크의 원조인 소니는 지난 2011년 생산 중단을 선언했다. 랩톱과 데스크톱을 막론하고, 컴퓨터에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삭제된 것은 오래전 일이다. 플로피 디스크를 메인으로 생산하는 회사도 한참 전에 없어졌다. 플로피 디스크가 마지막까지 현역으로 남아 있던 국가는 아마 일본일 것이다. 일본 경산성은 얼마 전인 2024년 1월 초 그동안 34개 시행령에 남아있던 ‘플로피디스크 및 CD-ROM으로 문서를 제출하라’는 법령 내용을 삭제한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금융사에서는 이 법령으로 인해 정부 문서를 제출하기 위해 구하기도 어려운 플로피 디스크와 인식 장치를 따로 구매해야 했다. 그런 불편이 단종 12년 만에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플로피 디스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윈도 OS의 드라이브 식별 문자는 C로 시작한다. 그럼 A 드라이브와 B 드라이브는 무엇일까? 5.25인치와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위한 공간이다. 매체가 사장된 후에도 수정되지 않고 관용적으로 C부터 쓰이고 있다. 또한 현재 대부분의 프로그램에서 쓰이는 저장 버튼 디자인은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형상화한 것이다. 플로피 디스크를 모르는 세대에게 실제 물건을 보여줬더니 저장 아이콘을 3D 프린트한 것으로 알았다는 일화도 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저장’의 의미로 USB의 모양을 차용한 프로그램도 있긴 하지만 디자인 특징이 별로 없는 USB 형태 특성상 판독성이 비교적 떨어져, 플로피 디스크의 명맥은 2D로나마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