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커 프리는 어떤 기능인가?

플리커 프리는 어떤 기능인가?

어렸을 적, 시력이 나빠져서 안경을 써야 했던 어린이들이 부모님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꾸중은 아마도 ‘TV 좀 그만 봐라’였을 것이다. 이 꾸중은 ‘너무 가까이에서 TV 보지 마라’, ‘누워서 TV 보지 마라’는 식으로 기출 변형되기도 했다.

영상 매체가 오직 TV밖에 없었던 시절, 어린이는 TV를 하루에 몇 시간이나 시청했을까? 지금처럼 종일 방송이 없던 시절이니, 하교 후 오후 5~6시 무렵부터 봤더라도 3~4시간이 한계였을 것이다. 어린이들이 꿈나라에 갈 시간이라고 방송에서 고지했던 시간이 오후 9시였으니 말이다.

어렸을 적, 9시 뉴스 시작 전에 어린이는 그만 자라는 공지가 나오곤 했다.

그랬던 어린이들이 수십 년이 지나 이제는 하루에 10시간(또는 그 이상) 가까이 영상 매체를 보는 시대가 됐다. 과연 우리들의 눈 건강은 괜찮은가? 아니, 애초에 TV 시청과 시력 악화에는 인과관계가 있긴 한 걸까?

영상 매체를 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디스플레이에는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고 있다. 눈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여 시력을 보호하는 기능들이 대표적이다. 이번 기사에서는 TV보다 더 오래 시청하는 것으로 짐작되는 모니터에 적용되는 대표적인 시력 보호 기능, ‘플리커 프리’ 기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세 줄 요약

  • 화면에서 빛이 깜박거리는 현상을 ‘플리커’라고 한다.
  • 플리커가 생기는 원인으로 휘도 제어 방식, 주사율, 동기화 오류 등을 꼽을 수 있다.
  • 플리커 프리 기능은 휘도 제어 방식을 ‘PWM 방식’에서 ‘DC 방식’으로 바꾸어 화면 깜박임을 없앴다.

화면이 깜빡이는 현상, 플리커

‘플리커 프리’ 기능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플리커’가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한다. 플리커(Flicker)는 ‘깜박거리다’ 또는 ‘깜박거림’을 뜻하는 말로 모니터와 관련해서 사용될 때는 화면에서 빛이 깜박거리는 현상을 말한다.

플리커 현상은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스마트폰 카메라로 모니터 화면을 찍은 후 영상을 보면 빛의 간섭 현상에 의해 생기는 동심원 모양의 흑백 줄무늬, ‘간섭호’가 일렁이는 모양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의 유튜브 영상을 보면 플리커가 어떤 현상인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왼쪽이 일반 디스플레이, 오른쪽이 플리커 프리 기능을 탑재한 디스플레이다. 간섭호를 확인하기 쉽게 휘도를 50% 수준으로 낮춰 촬영했다.

빛이 깜박거리게 되면 필연적으로 빛의 양 즉 광량의 급격한 변화가 수반되고, 안구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홍채’ 주위의 근육은 끊임없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해야 한다. 즉, 눈이 쉽게 피로해지는 것이다. 또한, 불규칙적으로 깜박이는 빛의 자극과 과도한 색깔 변화로 인해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보던 10대 초반 어린이들이 단체로 뇌전증(간질)을 일으킨 1990년대의 ‘닌텐도 광과민성 증후군’ 사례도 있는 만큼 디스플레이의 깜박거림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다.

‘포켓몬 쇼크’로도 불렸던 광과민성 증후군 사태 이후 반짝이는 빛이나 무늬 등이 포함된 영상 콘텐츠에는 이런 경고문이 안내된다.

플리커가 생기는 이유

그렇다면 플리커는 왜 생기는 걸까? 이유는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① 휘도 제어 방식

디스플레이의 밝기를 조정하는 방법 중에 LED 백라이트를 빠르게 점멸시키는 방법이 있다. 보통 PWM(Pulse Width Modulation) 제어 방식이라고 하는데, ‘펄스 폭 변조’ 제어 방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원래 디지털로 출력되는 파형의 폭을 변조해 0 또는 1이 아닌 아날로그값을 출력하는 원리인데, 이를 디스플레이에 적용하면 원래는 밝기 단계를 1개밖에 설정할 수 없는 저렴한 LED 라이트라도 출력 전압(=깜박이는 속도)을 조절함으로써 디스플레이의 밝기를 바꿀 수 있게 된다.

다만 이 방식을 이용해 밝기를 조절하면 플리커가 발생해 눈에 안 좋은 영향을 주게 된다. 아래의 영상을 보자.

왼쪽 영상은 오른쪽과 다르게 빛이 빠르게 깜박이고 있다. PWM 제어 방식에서는 디스플레이 내부에서 이처럼 LED 빛이 빠르게 깜박이며 디스플레이의 밝기를 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밝은 화면에서는 이런 깜박임이 워낙 빠르게 진행되므로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불이 들어와 있는 시간이 길수록 밝아지기 때문에).

하지만 휘도가 낮으면(어두우면) 깜박이는 속도가 느리다는 뜻이고, 백라이트가 켜지지 않은 시간이 길어지게 되므로 켜졌을 때와의 차이를 사용자가 더 알아차리기 쉬워진다. 즉, 사용자가 깜빡임을 인지하게 되면서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② 주사율

TV를 비롯한 디스플레이는 아날로그의 연속된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다른 정지 화면을 빠르게 보여줌으로써 마치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라는 점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정지 화면을 1초에 얼마나 자주 갱신에서 보여주는지가 주사율(Refresh rate)이다. 주사율이 낮으면 화면이 갱신되는 속도가 느려지면서, 움직임은 부자연스러워지고 화면에서 깜박임을 느낄 수 있다.

타자가 배트를 휘두르는 모습을 주사율 144Hz 모니터와 60Hz 모니터로 비교했을 때 차이를 설명하는 그림. 주사율이 낮으면 움직임은 부자연스러워지고 화면에서 깜박임을 느끼기 쉬워진다. (사진 출처 : ㈜크로스오버존)

③ 동기화 오류

디스플레이와 컴퓨터(또는 영상 정보를 디스플레이에 보내는 역할을 하는 부품 전반)가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뭔가의 이유로 인해 오류가 생겨 동기화되지 못했을 때 화면에 깜박임이 발생하기도 한다. 오래된 연결 케이블을 사용하거나 입출력 단자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런 현상이 발생하곤 한다.

플리커를 없애는 플리커 프리 기능

플리커 프리는 지금까지 설명한 플리커 현상을 감소 또는 없애기 위해 개발된 기술이다. 이 기술이 적용되면 눈에 가해지는 부담이 줄어들어 장시간 모니터를 바라봐도 덜 피로해지며, 이로 인해 두통이나 시력 저하 등 건강 관련한 걱정도 줄어든다. 전에는 영상 편집이나 제작 등 전문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했는데, 최근에는 게이밍 경험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지면서 ‘게이밍 모니터’에도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모니터 제조사에 따라 다양한 플리커 프리 로고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은 뷰소닉의 ‘플리커 프리’ 로고

그렇다면 플리커 프리 기능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걸까? 원리는 간단하다. LED 백라이트가 깜박이는 빈도를 통해 휘도를 조절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류의 세기를 조절해 빛의 밝기(휘도)를 제어하는 방식을 도입하면 된다. 이를 DC 제어 방식이라 한다.

플리커 프리가 적용된 모니터와 일반 모니터를 비교한 영상

이 방식에서는 전류가 약하면 어두워지고, 전류가 강하면 밝아진다. 전류의 세기를 조절함으로써 LED의 휘도를 항상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으므로 LED 백라이트의 깜박임은 일어나지 않고, 따라서 플리커 현상도 생기지 않는다. PWM 제어 방식과 비교해 제조 단가는 비싸지지만, 플리커 현상을 완전히 없앰으로써 사용자 경험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인해 현재 이 기술을 도입한 모니터가 많아지고 있다.

LG전자의 OLED 디스플레이는 지난 2020년 인증기관으로부터 플리커 프리 인증을 받았다.

제대로 된 게이밍 모니터라면 필수

게이밍 모니터의 사용자는 자신도 모르게 종종 몇 시간씩 게임에 몰두하기 쉬우므로 눈이 피로해지기 쉽다. 따라서 화면 깜박임을 없앤 플리커 프리 모니터는 무엇보다 시력과 두통 등 건강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위해서도 필수라고 할 수 있다. 두 시간 정도씩 플리커 프리 모니터와 일반 모니터를 사용해보면 그 차이를 분명하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게임을 즐길 때뿐만 아니라 인터넷으로 유튜브를 보거나 넷서핑을 할 때, 그리고 장시간 작업이 필요한 사무용 모니터로도 플리커 프리 기능은 아주 유용하다. 모니터의 크기나 해상도, 주사율 등에만 주목하지 말고, ‘플리커 프리’ 기능처럼 사용자에게 아주 유용한 기능에 초점을 맞추는 좋은 구매 습관을 들이길 권한다.

건강을 위해서도 좋은 구매 습관을 들이자. (사진 출처 : viewsoni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