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IBM PC, 5150을 둘러싼 아이러니
1981년 8월은 컴퓨터 역사상 기념비적인 시기다. IBM이 만든 첫 개인용 컴퓨터 5150이 출시됐기 때문이다. 애플 2와 함께 대히트한 5150을 시작으로 비로소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 PC)라는 용어가 우리 생활 깊숙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공개 아키텍처를 표방한 IBM은 그 장점을 살려 개발비를 줄이고 빠르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지만 역으로 이로 인해 시장에서 밀려나는 실마리를 스스로 제공했다. 5150의 개발을 둘러싼 사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970년대 중·후반만 해도 ‘컴퓨터’라는 물건은 무지막지한 공간과 전력을 필요로 했다. 순수 운영 인력만 해도 수십 명이 필요했으니 물건이라기보다 시설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그런데 1976년 애플 1, 77년 애플 2가 선보이면서 그런 컴퓨터가 책상 위에 올라갈 수 있는 데스크톱의 시대가 열렸다. 당시 IBM은 메인프레임 컴퓨터로 많은 수익을 올리는 세계 최대 컴퓨터 생산업체였다. 그러나 그런 거대기업에도 개인용 컴퓨터는 낯선 개념이었다. IBM은 애플이나 코모도어처럼 매출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던 소규모 벤처기업이 만드는 개인용 컴퓨터에 전복당하지 않을까 두려움을 느껴 빠른 출시를 통해 시장점유율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고자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부품을 새로 개발하기보다 외부 업체와 협력하기로 했다.
CPU는 인텔의 8088, 운영체제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MS-DOS를 사용하기로 했다. 이 MS-DOS는 SCP-DOS라는 운영체제를 사들여 개량한 것이다. IBM은 운영체제를 위해 처음에는 게리 킬달이 이끄는 디지털리서치와 접촉했으나 디지털리서치는 운영체제의 모든 권한을 넘기기보다 사용권만을 넘기고 싶어했다. 결국 협상은 결렬되고 MS가 기회를 잡았다.
기존 메인프레임 컴퓨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선보인 5150은 출시 후 8개월 만에 5만 대 이상이 팔려 예상을 뛰어넘는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했다. 또 하드웨어와 기본 프로그램 소스 코드를 공개하여 다른 회사에서도 비슷한 PC를 만들 수 있도록 개방형 아키텍처를 채택함으로써 컴퓨터가 소수의 프로그래머나 게이머를 위한 마이너한 기기가 아닌 일상생활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러나 더 큰 파도가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엔 아키텍처를 공개하더라도 기본 입출력 시스템인 BIOS 원천기술을 IBM이 보유하고 있어 타사에서 IBM과 완벽히 호환되는 제품을 만들 수 없었다. 그러나 곧 컴팩에서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BIOS 복제에 성공했다. 그것은 외부 케이스나 주변기기가 아닌 본질적인 성능 면에서 IBM 제품만의 차별성이 사라진다는 것을 뜻했다. 모두가 비슷한 PC를 만들 수 있게 됨에 따라 주도권은 제조사가 아니라 안에 들어가는 부품 제조사로 넘어갔다.
1981년만 해도 인텔과 MS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았다. 그러나 IBM이 주저하는 사이 두 회사는 타 업체를 상대로 운영체제와 CPU를 판매할 수 있다는 엄청난 가능성을 간파했다. 게다가 IBM은 둘과 계약하면서 독점공급 조항을 넣지 않는 실책을 범했다(이후 애플이 MS를 상대로 비슷한 실수를 하게 된다). 결국 80년대 중반 이후 시장의 주도권은 일명 ‘윈텔’이라 불리는 운영체제/CPU 제조사 간 연합으로 넘어가고 IBM은 이를 조합해서 판매할 뿐인 수많은 PC 업체 중 하나로 전락하게 된다. 이를 인지한 IBM은 자사에서 모든 독점권을 갖는 PS/2라는 아키텍처를 뒤늦게 내놓았지만 이미 고착된 시장 흐름을 뒤집지 못했다. 90년대 초반에는 윈텔을 넘어서기 위해 애플·모토로라와 협력하여 PowerPC라는 인텔의 대안 CPU를 출시했는데 대중화에는 역시 실패했다. PowerPC는 애플마저 2006년 인텔로 환승할 때까지 PC 시장에서는 사실상 맥 전용으로 인식됐다.
춘추전국시대에서 차별화에 실패한 IBM은 데스크톱 시장에서 철수한 데 이어 랩톱인 씽크패드 브랜드도 2005년 레노버에 넘기고 철수했다. 본격적인 PC 시대를 연 주인공의 쓸쓸한 퇴장인 셈이다. 그러나 IBM이 시장지배력을 잃은 덕분에 현재 우리가 싸고 저렴한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또 하나의 혁명인 인터넷 탄생에 컴퓨터가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을 생각하면, ‘PC의 선구자’로 역사책에 남은 것만으로 IBM에겐 충분한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