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로 보는 헤리티지: 애플 아이맥 디자인

컬러로 보는 헤리티지: 애플 아이맥 디자인

1985년 5월 스티브 잡스는 특유의 괴팍한 성격으로 자신이 영입한 CEO 존 스컬리와 파워게임을 벌이다가 자신이 세운 애플에서 쫓겨났다. 그 후 존 스컬리, 길 아멜리오 등이 이끌던 13년간 매킨토시 II, LC, 쿼드라, 파워 매킨토시 등 애플 컴퓨터가 내놓는 주력 신제품은 모니터와 본체가 분리된 일반적인 디자인을 고수했다.

1997년, 위기에 빠져 운영체제를 내부에서 개발할 여력이 없던 애플이 잡스의 넥스트를 인수함으로써 약간 애매한 형태긴 하지만 잡스는 애플로 돌아올 수 있었다. Windows95의 대항마로 개발하던 코플랜드도 최종적으로 실패했다. (기존 매킨토시 시스템과 완전히 다른 새 운영체제는 OS X라는 이름으로 4년 후 나왔다) 복귀한 잡스는 가정용 데스크톱 컴퓨터의 개발을 추진했다. 신제품의 힌트는 자신이 생각하는 애플의 정신이 가장 잘 발현된 예전 모델에서 찾았다. 그는 84년 등장한 애플 매킨토시로 돌아가 모니터와 본체가 결합된 쉽고 간단하게 다룰 수 있는 올인원 컴퓨터를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너선 아이브는 92년 애플에 입사했고 4년 후 팀장으로 승진했지만 회사가 내놓는 디자인에 큰 애정은 없었다. 디자인과 디자이너가 제품의 중심이 되지 못하는 분위기에 진절머리가 난 그는 곧 퇴사 예정이었다. 그러나 애플로 돌아온 잡스가 팀장급 이상 간부를 불러 모아 행한 격려 연설을 듣고 그만둘 생각을 고쳐먹었다.

잡스와 아이브가 처음으로 합작한 새 데스크톱의 이름은 결국 아이맥으로 정해졌다. 이는 ‘인터넷 Internet에 편리하게 접속 가능한 가정용 매킨토시 ‘MACintosh’라는 초기 컨셉을 반영한 이름이다. 인터넷은 아이맥 개발의 중요한 테마였다. 맨 처음 계획은 네트워크 컴퓨터, 즉 하드디스크 드라이브를 뺀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네트워크 접속에 사용되는 저렴한 단말기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하드웨어 개발을 맡은 존 루빈스타인은 기존 라인업에 있던 전문가용 컴퓨터 파워맥 G3의 내부 장치를 새 제품에 맞도록 개조했다. 그때까지 널리 쓰이던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를 제외하는 것은 과감한 선택이었지만 훗날 옳은 결정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아이맥의 디자인에서 군더더기가 하나씩 사라져 갔다.

이제 이 야심 찬 신제품의 본격적인 디자인을 해내야 했다. 아이브는 플라스틱으로 된 곡선 케이스의 모형을 만들어 잡스에게 보여 주었다. 재기 넘치는 운반용 손잡이를 갖춘 케이스는 반투명으로 이뤄져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고 멋진 청록색 컬러를 갖고 있었다. 여기엔 ‘본다이 블루’라는 이름이 붙었다. 매력적인 반투명 케이스를 만들기 위해 젤리 공장까지 돌며 연구를 거듭했다. 여기엔 당연히 막대한 경비 지출이 따랐다. 완성된 케이스의 단가 자체도 보통 케이스에 비해 3배 이상 비쌌다. 다른 회사였다면 개발 단계에서 이런 지출이 허용될 확률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잡스와 아이브가 있는 애플에선 그것이 가능했다. 하키 퍽 모양으로 디자인된 전용 마우스 역시 본체와 플라스틱에 포인트 컬러를 넣은 형상으로 제작됐다. 다만 앞뒤의 구분이 어려운 정원 모양이라 조작감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브가 처음 제안한 컬러는 본다이 블루 한 가지였다. 그러나 아이맥 판매가 본 궤도에 오르자 그는 곧 반투명 케이스의 이점을 살려 네 가지 컬러를 추가했다. 이 매력적인 그린, 오렌지, 레드, 퍼플을 소비자에게 추가로 제공하려면 그만큼 제품 생산과 관리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갈 터였지만 잡스는 그런 문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여러 컬러가 가미된 아이맥은 딱딱한 전자제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심지어 젤리처럼 한입 베어 물고 싶기까지 한 친근함을 사용자에게 주었다. 소비자들은 그런 제스처에 판매량으로 응답했다. 98년 말까지 80만 대가 팔려나간 첫 아이맥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디자인 아이콘의 반열에 올랐다.

2021년 4월 애플 이벤트에서 발표된 새로운 아이맥의 다채로운 컬러 케이스는 98년의 첫 아이맥을 떠올리게 한다. 은색 일색이었던 이전 아이맥에 비해 많은 의견이 오갔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다양한 컬러가 바로 아이맥을 관통하는 헤리티지라는 사실이다. ‘아이맥’이 돌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