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노트북의 역사: 매킨토시 포터블에서 맥북 프로까지(1)
효율적인 도구를 이동하면서 쓰고 싶다는 생각은 본능에 가깝다. 컴퓨터를 일반 사용자가 도저히 들고 다닐 수 없던 시절부터 휴대에 대한 욕구는 존재했다. 1984년 데뷔한 초대 매킨토시는 지금 기준으로는 믿기지 않겠지만 상단에 운반 손잡이가 있었고, 휴대용 정품 가방도 함께 나왔다. PC가 크고 무겁던 시절이라 매킨토시는 그나마 가벼운 축에 속했던 것이다. 같은 해 나온 애플 IIc에도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본체와 모니터가 분리된 IIc의 휴대성은 그나마 상식적인 편이었다.
휴대용(portable)을 정식으로 표방한 첫 애플 제품이 데뷔한 것은 5년이 흐른 1989년. 매킨토시 포터블이란 이름이 붙은 이 제품은 애플 IIc의 본체를 연상시키는 ‘스노우 화이트’ 디자인 언어를 적용했고 본체 상단 1/2가량이 경첩을 통해 열림으로써 640×400 해상도의 모니터와 키보드, 트랙볼을 쓸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본체는 거대했지만 당대 경쟁 제품과 비교할 때 불리할 정도의 사이즈는 아니었다. 마이크로프로세서는 당시 애플이 즐겨 사용하던 모토로라 계열 68000을 썼다.
그러나 선구적 개념을 도입한 초창기 제품이 그렇듯 상품성은 좋다고 하기 어렵다. 일단 두께가 10cm, 무게가 7kg이 넘었고 CPU도 동시기 고급 모델 SE/30이 이미 68030을 탑재했음을 고려하면 좋은 사양이라 할 수 없었다. 화면 내 백라이트가 없어 어두운 곳에서의 작업이 불가능했으며 배터리와 가성비에서도 장점이 없어 조기 단종되는 비운을 맞았다. 특히 가격은 애플 특유의 정책을 감안해도 당시 물가로 7,300달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고가를 자랑했으니 판매가 잘 될 수가 없었다. 시대의 풍파를 딛고 살아남은 소수의 매킨토시 포터블만이 오늘날 수집용으로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실패의 시간은 짧았다. 애플이 절치부심하여 개발한, 진정한 애플 노트북이라고 할 만한 첫 제품은 1991년 10월 선보인 파워북(Powerbook) 100시리즈다. 사양에 따라 100, 140, 170 3종류로 구성된 파워북 100시리즈는 무게를 많이 차지하는 배터리를 줄이고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외장형으로 구성하는 등 휴대성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통해 무게도 경쟁 제품인 일본 도시바 노트북보다 가벼운 2kg대 초반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파워북 100시리즈가 채택한 키보드와 트랙볼(trackball), 팜레스트(palmrest)의 기본 배치는 현재 시판되는 대부분의 노트북과 큰 차이가 없어 현대 노트북의 원형으로 평가할 수 있다.
조금 더 들어가 보자. 파워북 100시리즈의 하판을 보면 키보드가 위에, 팜레스트와 트랙볼・기타 조작부가 아래 위치한다. 반면 윈도 OS를 채택한 IBM 호환기종 진영의 노트북은 트랙볼 조작 공간을 따로 두고 있지 않다. 키보드가 아래쪽에 위치한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차이점이다. 마우스 커서로 본체를 제어하는 GUI(graphical user interface)를 채택한 매킨토시 계열 노트북은 마우스나 트랙볼이 중요했다. 그러나 아직 원시적인 CUI(character user interface)에 머무르던 윈도 진영은 직관적 조작버튼을 위한 공간을 두지 않은 것이다.
전체적인 디자인도 매킨토시 시리즈나 IIGS의 본체 일부를 떼어다 개조한 것처럼 낯설었던 매킨토시 포터블과 달리 상단 전체를 열고 닫는 형태로 설계됨으로써 지금 보아도 크게 위화감이 없도록 만들어졌다. 회색 본체 한쪽에 박힌 컬러 로고가 묘하게 어울리는 파워북은 가격도 합리적으로 구성하여 전작을 크게 뛰어넘는 인기를 누렸다.
이런 역사를 반영하듯 애플 역시 자사 노트북 라인업의 실질적 시작점을 파워북 100시리즈로 보고 있다. 존 스컬리가 CEO로 재직하던 시절 출시된 뉴턴 메시지패드를 단종시키는 등, 스티브 잡스 지휘하에 나오지 않은 제품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애플이 주목하는 몇 안 되는 제품인 셈이다. 1990년대 초반은 경쟁사 IBM이 지금까지도 브랜드가 유지되는 걸작 씽크패드(ThinkPad) 시리즈를 선보이는 등 전문 사용자를 위한 노트북 컴퓨터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