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CPU의 역사: MOS에서 실리콘까지(2)
지난 2005년 애플의 수장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안다면 모두 깜짝 놀랄 만한 선언을 했다. 애플, 모토로라, IBM이 합작한 AIM 동맹의 유산 PowerPC를 사용하던 애플 컴퓨터 CPU를 2006년부터 인텔 칩으로 전환하겠다는 발표였다. 고성능 PC와 서버 지향이었던 PowerPC는 노트북에 적합하지 않았고, 발열 문제도 심각했다. 마침 인텔이 새로 출시한 칩이 애플의 향후 목표와 일치했다.
이로써 2006년 1월 출시한 맥 신제품부터 윈도와 macOS를 동시에 그것도 부트캠프(Boot Camp)라는 정식 지원으로 구동시키는 신기한 일이 가능해졌다. 애플 컴퓨터의 디자인과 편의성을 동경하지만 윈도 OS가 지닌 범용성 때문에 맥을 쉽사리 선택하지 못했던 사용자를 유혹하면서 맥의 시장점유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도 이때다. 2008년 애플이 선보인 새 라인업 맥북 에어의 개발도 인텔 CPU로 이주함으로써 가능했다. 서류봉투에 담은 신제품을 들고 프레젠테이션하는 잡스의 모습은 지금도 회자된다. PowerPC 기반 맥에 대한 지원은 2009년을 끝으로 중단됐다.
그러나 전무후무한 ‘인텔 맥’ 역시 영원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맥의 발전 속도를 인텔 CPU가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PC의 숙명인 발열 문제가 심각해졌다. 발열을 식히기 위한 팬 소음은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 같은 굉음을 냈다. 카페에서 팬 소음이 들려 돌아보면 인텔 칩이 장착된 특정 연식의 맥북인 경우가 많다. 애플은 2020년 말 독자 설계한 애플 실리콘(silicon)으로 CPU를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이와 함께 14년간 가능했던 오월동주, macOS와 윈도 OS의 공존도 막을 내렸다.
맥에서 윈도를 돌리는 일은 다시 어려워졌다. 패러렐즈라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하드웨어 수준의 호환성을 자랑했던 부트캠프에 비하면 아무래도 구조적 안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애플의 독자노선은 2006년 잡스가 제안한 아이폰용 칩 공급을 인텔이 거절한 데서 시작됐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협상 결렬이 애플의 자체 설계 역량 강화의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근본 이유가 무엇이든 애플은 이제 뚜렷한 마이웨이를 걷고 있다. 맥뿐만 아니라 아이패드, 에어팟, 애플워치 등 애플이 생산하는 모든 제품에 시리즈별로 나뉘어 들어가는 실리콘 칩의 생산은 대만 TSMC가 담당한다.
M1 칩을 채택한 맥북 에어에는 쿨링팬이 없다. 그러면서도 발열을 잡고 성능은 인텔 시절보다 더욱 향상됐다. 앞서 잡스는 디자인을 망치고 소음을 유발하는 쿨링팬을 하드웨어에서 빼야 한다는 입장을 무리하게 밀어붙여 애플 3을 실패작으로 만든 바 있다. 1980년 당시 기술력 부족으로 실현되지 못한 그의 고집이 사후에 결실을 맺은 셈이다. 잡스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사상은 그가 남긴 최대 유산 애플에 여전히 짙게 흐른다는 생각이 든다.
애플의 특징은 하위호환에 무감각하다는 것이다. 오래 쓴 칩이든 적게 쓴 칩이든 효율성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과감히 타 아키텍처로 갈아타는 전략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대신 현재 상황에서의 효율성을 가장 많이 추구한다. 이것은 뚜렷한 장단점을 지닌다. 호환성을 버리고 기능을 택한 M1 칩 필두로 성능이 향상된 M2, M3 칩을 탑재한 컴퓨터가 계속 출시되고 있다. 인텔 맥은 빠르게 자취를 감추는 중이다.
시장엔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 천하의 애플에게도 엔비디아를 필두로 AI 반도체가 떠오르는 최근 상황은 녹록치 않다. 애플 역시 이런 흐름에 동참하여 AI 작업에 최적화된 M4 칩을 올해 말 혹은 늦어도 내년 초까지 출시한다는 소식이 있다. 우선 6월 열리는 연례개발자회의(WWDC)에서 새 칩과 함께 자체적으로 구상 중인 AI 대응 전략을 발표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재 애플은 이 분야에서 가장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평가는 M4가 내는 퍼포먼스에 따라 바뀔 수도 유지될 수도 있다. 그러나 M4의 성능이 어떻든, 애플 실리콘이 시장에 안착한 이상 꽤 오랜 기간 이주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것이 이주의 끝이자 최종 지향점일 수도 있다. 애플은 예나 지금이나 수직계열화, 직영화로 대표되는 고유 생태계 형성과 통제력 강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