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CPU의 역사: MOS에서 실리콘까지(1)
컴퓨터의 심장은 중앙처리장치(CPU)다. 대표적 컴퓨터 제조업체인 애플은 1976년 회로 기판 상태로 출하된 첫 모델 애플 1을 내놓으면서 MOS 테크놀로지의 제품을 CPU로 채택했다. IBM 호환 PC 진영의 CPU는 인텔 천하로 거의 정리됐지만, 애플은 한 군데 정착하지 않고 10여 년 주기로 칩을 계속 바꿔 왔다. 특히 2006년에는 라이벌 윈도 진영과 동일한 인텔 칩을 채택하면서 화제가 됐다. 부트캠프 등의 기능을 통해 잠시나마 맥에서 윈도를 같이 구동시키는 것이 가능했던 기간이 이 시기였다. 이후 애플은 2020년부터 자체 개발한 애플 실리콘으로 CPU를 다시 교체했다. 실리콘에 투자된 금액과 인프라가 막대하고 자체 칩이라는 안정성이 크기 때문에 당분간 애플이 다른 파트너를 찾아 나설 확률은 낮아 보인다. 이로써 오랜 이주 생활은 일단 막을 내렸다.
MOS 테크놀로지는 모토로라에서 일했던 개발진이 모여 창업한 회사로, 1975년 출시한 8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6502를 애플이 처음으로 채택함으로써 PC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1970년대 중반 많이 쓰이던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인텔 i8080이었지만 성능 대비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다. 반면 모토로라 MC 6800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1MHz 속도의 6502는 단순 저렴하면서도 안정적이었기에 스티브 워즈니악은 이를 CPU로 사용하기로 했다.
애플 1에 이어 1977년 불멸의 히트작 애플 2에 장착되면서 최대 전성기를 맞은 6502는 개인용 컴퓨터 외에도 게임기인 아타리 2600, 닌텐도 패미컴 등 많은 제품에 쓰이면서 전성기를 구가했고 애플 2 시리즈가 1993년까지 생산되면서 그만큼 장수했다. 650X 시리즈의 탄생에 주도적 역할을 한 개발자 척 패들은 2019년 별세했는데, 스티브 워즈니악은 그에 대해 "‘척'이란 이름은 현대 테크놀러지를 이끌어 온 기술자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이후 애플은 리사(1983)를 시작으로 1980년대 내내 모토로라가 1979년 개발한 16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인 68000을 애용했다. 줄여서 68k라고도 하는 68000은 매킨토시 128k, 매킨토시 플러스, 매킨토시 2같은 신모델의 지속적인 출시에 따라 68010, 68020, 68030 등으로 계속 개량되어 장착됐다. 매킨토시의 강점인 사용자 친화적 GUI(Graphic User Interface)는 우수한 성능을 지닌 68000의 토대 위에서 구현될 수 있었다. 1989년 출시된 후기 클래식 맥인 SE/30의 모델명에 붙은 ‘30’이 모토로라 68030을 썼다는 의미다.
그러나 80년대 말을 지나면서 노후된 68000의 문제점이 계속 감지된다. 연구개발 부문의 규모가 인텔보다 한참 작은 모토로라가 내놓은 68000의 후속 88000은 더 이상 인텔 CPU를 채택한 라이벌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모토로라 노선을 걷던 매킨토시의 판매가 지지부진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에 애플의 CEO 존 스컬리는 1990년대 초 ‘타도 윈텔(윈도우+인텔)’을 위해 기존 파트너 모토로라에 더해 IBM을 끌어들인 AIM 동맹을 구상했다. 최고 수준의 반도체 개발 능력을 지녔음에도 자신이 열어젖힌 개인용 PC 시장에서 호환 기종과의 대결에 패배해 밀려나 있던 IBM이 동맹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1991년 10월 AIM 연합이 공식 출범했다. 지금 봐도 낯선 애플과 IBM의 악수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10년 전만 해도 세계 PC 시장 패권의 중심에 있던 두 회사가 2인자로 밀려나, 절치부심하며 한 배를 타게 된 것이다.
애플은 여기서 개발한 PowerPC라는 새 CPU를 1994년 전면적으로 채택하면서 오랫동안 함께한 68k와 결별했다. PowerPC를 탑재한 제품에는 파워북, 파워 매킨토시란 이름을 붙이면서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업계의 거인이 한데 모인 야심찬 출발과 달리 PowerPC 진영은 더딘 성능 발전으로 결국 타도 윈텔을 이루지 못하고 만다. 이보다 큰 근본적 문제는 과거 애플 3을 끝까지 괴롭힌 발열이 또다시 문제가 됐다. 잡히지 않는 발열로 인해 파워맥 G5는 통상적인 공랭식 쿨러가 아닌 수랭식 쿨러까지 달아야 했다.
상대적으로 공간이 많은 데스크톱에는 부가 장치로 발열을 겨우 해결할 수 있다고 해도 휴대성이 중요한 노트북은 그럴 수 없었다. 문제가 너무 심해 애플은 PowerPC G5를 사용한 노트북을 내놓지 못할 정도였다. 상황이 이런데도 동맹 회사들은 대응에 소극적이었으니 다시 이주가 필요했다. 애플로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2006년 인텔 CPU로 갈아타기로 결정하면서 PowerPC를 채택한 애플 제품군을 모두 단종시켰다. PowerPC의 퇴장과 함께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모토로라와 IBM의 존재감 또한 거의 사라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