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느낌 구현에 충실한 8BitDo의 기계식 키보드

레트로 느낌 구현에 충실한 8BitDo의 기계식 키보드

최근 레트로 전자기기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IT 하드웨어 분야에서 관련 제품 발매가 줄을 잇고 있다. 그 종류는 유명했던 과거 기종의 외형만 재현한 것에서 실제 게임이나 프로그램을 구동되게 만든 제품까지 다양하다. 이같은 기류는 국내에도 점점 퍼지는 추세인데, 가격이나 유지보수 면에서 부담 없이 접근하기 쉬운 키보드가 특히 눈에 띈다. 큐센 DT-35와 지난 2015년 한성컴퓨터에서 개발하여 한정판매한 일명 ‘응답하라 1992’ MAF-35 기계식 키보드가 대표적이다.

DT-35는 마니아층에 어필하기 불리한 멤브레인 방식임에도 저가형 기계식 키보드에 밀리지 않는 타건감과 1990년대 PC 키보드 느낌이 그대로 보존된 디자인으로 소리 없이 인기가 높다. MAF-35는 DT-35와 마찬가지로 1990년대 초반 IBM PC와 짝을 이뤘던 키보드 디자인을 재현했고 과거 알프스전기에서 생산했던 백축과 구조가 비슷한 유사축을 장착하여 경쾌한 타건감을 보여준다. 1980년대부터 명맥을 잇고 있는 IBM 모델 M(현재 렉스마크 생산)도 마니아를 중심으로 꾸준히 중고 거래가 이뤄지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레트로 콘셉트의 컴퓨터 주변기기를 주로 발매하는 8BitDo의 기계식 키보드가 눈길을 끈다. 현재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제품은 아마 과거 유명 기기의 컬러와 디자인을 가져와 비슷하게 만든 텐키리스 키보드 시리즈일 것이다. 닌텐도 패미컴과 IBM 모델 M 등의 여러 버전이 발매됐는데 이중 개인적으로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여겨지는 버전은 1982년 발매되어 북미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끈 가정용 PC 코모도어 64(C64) 전기형의 디자인을 재현한 것이다.

원래 PC가 아닌 패미컴과 달리 두툼한 두께가 특징인 오리지널 C64는 본체 위에 키보드가 달린 PC였다. 그래서 재현품의 디자인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본체와 키보드가 합쳐져 있고 모니터를 따로 연결해 써야 하는 C64는 지금 기준으로는 이상하지만, PC의 디자인이 천차만별이었던 80년대 초에는 특이한 모습이 아니었다. 공전의 히트작 애플 2도 비슷한 형태로 출시됐으니 말이다. 어쨌든 오리지널 C64가 저렴한 가격과 준수한 사양으로 가정용 PC의 대중화를 이끈 주인공이었던 것과 달리 이번 8BitDo의 재현품은 저렴하지만은 않은 가격표를 달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제품이 지닌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프론티어텍이 8BitDo 제품의 국내 공식 총판을 맡고 있다.

8BitDo의 기계식 키보드 C64 버전은 오리지널 C64의 톤온톤 배색과 오목한 키캡 표면까지 재현해 눈길을 끈다. 오목한 키캡은 기계적인 이점이 있지는 않지만 손가락 끝을 좀 더 안쪽으로 이끌어 손가락이 키캡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스위치는 카일 박스 백축 V2를 기본으로 장착했다. 이 제품은 스위치까지 떼어낼 수 있는 핫스왑을 지원하여 만약 스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사용자가 원하는 스위치로 교체할 수 있다. 구성품으로 대형 스위치와 조이스틱이 딸려 와 재미있게 활용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 쓰일 만한 구성품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 사용자부터 전문 마니아까지 고려한 구성이 돋보인다.

텐키리스가 공간절약에 유리하긴 하지만 넘버패드가 필요한 사용자도 생각보다 많다. 그런 사용자들은 별도 출시된 넘버패드를 구매하면 된다. 텐키리스 키보드와 동일한 디자인에 동일한 스위치를 장착한 8BitDo의 넘버패드는 컴퓨터에 연결하지 않을 시 계산기로도 활용할 수 있는 제품이다. 연결 역시 키보드처럼 유선과 무선으로 모두 가능하다. 특히 PC 연결 해제 시 계산기로 쓸 수 있게 한 아이디어가 단순하지만 절묘하다. 계산기라면 갖춰야 할 액정화면은 검은 바탕에 붉은 디지털 숫자로 표시되는 방식으로 사용자의 레트로 감성을 한껏 자극한다.

사무현장에서 다용도로 쓸 수 있는 활용성이 돋보이는 이 레트로 넘버패드는 동사의 레트로 키보드와 함께 두면 멋진 세트를 이룬다. 키보드와 마찬가지로 패미컴부터 C64 버전까지 선택할 수 있으니 텐키리스로 충분한 사용자라도 구입을 한 번쯤 고려할 만하다. 레트로는 잘 만들면 좋지만, 어설프게 만든 디테일로는 오히려 소비자들의 철저한 외면을 부를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 8BitDo는 여러 디자인 요소를 잘 버무려 이런 위험을 제거하고 핵심 소비자층 형성에 성공한 듯 보인다. 이들이 미래에 또 어떤 창의적 제품으로 마니아들의 지갑을 열게 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