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 40주년을 맞은 닌텐도 패밀리 컴퓨터

출시 40주년을 맞은 닌텐도 패밀리 컴퓨터

1980년대 초반, 세계 비디오 게임 업계는 일명 '아타리 쇼크'라 불린 대규모 침체에 빠져 있었다. 아타리의 히트작 퐁(PONG)이 불러온 비디오 게임 전성시대는 그만큼 질 낮은 게임과 프로모션의 난립을 낳았다. 처음 몇 년간은 그럭저럭 버틸만 했지만, 과열된 시장이 <E.T.>를 기점으로 폭발하여 소비자의 외면과 게임업계 전체에 대한 불신을 불러왔다. 결국 쇼크 직전인 1983년 30억 달러에 달했던 시장 규모는 2년 후 1/30까지 줄어들었다.

이때 암흑기에 빠진 비디오 게임업계 흥행의 불씨를 다시 살린 것이 닌텐도 패밀리 컴퓨터 즉 '패미컴'이다. Wii, DS, 스위치 등을 잇따라 히트시킨 닌텐도는 오늘날 게임기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1970년대 후반만 해도 비디오 게임 부문의 존재감은 아주 미미한 회사였다. 소프트웨어 개발도 하드웨어 개발 능력도 약해 타사 외주에 의존할 정도였다. 그런 구도를 뒤엎고 양쪽에서 모두 강한 회사로 도약하게 된 계기가 패미컴이었다.

시계바늘을 1981년으로 돌려 보자. 당시 닌텐도의 사장이었던 야마우치 히로시는 향후 3년간 경쟁자가 나오지 못할 정도의 고사양을 갖춘 카트리지 방식 게임기를 개발할 것을 지시했다. 요구되는 사양에 비해 시간이 짧았지만 숨가쁜 개발 일정 끝에 1983년 7월 결국 8비트 가정용 게임기인 패미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에서는 패밀리 컴퓨터, 북미와 유럽 시장에선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의 약자인 NES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 가족이 함께 즐긴다는 의미를 담은 ‘패밀리 컴퓨터’라는 이름은 초창기 개인용 컴퓨터와 구분이 모호했던 비디오 게임기의 위상을 암시하기도 한다(물론 케이스 디자인은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데스크톱 컴퓨터와는 거리가 멀다). 닌텐도의 엄격한 생태계 관리 정책으로 인해 초기 판매량은 그저 그런 수준이었지만 출시 이듬해부터 허드슨, 남코 등의 서드파티 게임 개발사들이 패미컴용 게임을 개발하고 1985년 북미 시장에 풀리면서 본격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1987년까지 누적 판매량 500만 대를 기록한 패미컴의 성공과 함께 꾸준한 하향 곡선을 그리던 게임 시장 전체 규모도 반등세로 돌아섰다.

80년대 들어 최초로 히트한 비디오 게임기인 패미컴은 많은 개념을 새로 정립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컨트롤러다. 패미컴 이전 컨트롤러는 버튼의 숫자와 배치, 역할이 제각기 달랐다. 그러나 패미컴이 십자키와 A/B 버튼을 중심으로 한 컨트롤러를 채택한 후 닌텐도뿐 아니라 타사에서 출시한 게임기 컨트롤러도 대부분 이런 배치를 따름으로써 비공식적인 표준이 됐다. 조이스틱을 버리는 것은 당시만 해도 위험성 있는 판단이었지만 결과는 성공이었다. 우수한 하드웨어에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동키콩〉, 〈젤다의 전설〉 등 지금도 회자되는 우수한 독점 타이틀이 더해지니 사람들은 이를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패미컴이 게임기의 대명사로 떠오르자 라이벌도 움직였다. 세가가 만든 16비트 가정용 게임기 메가드라이브가 대표적이다. 메가드라이브는 패미컴을 저지하지는 못했지만 만만찮은 사양과 콘텐츠로 나름의 수요를 창출하며 선전했다. 이에 선두주자인 닌텐도의 반격도 뒤따랐다. 패미컴의 후속작으로 1990년 내놓은 슈퍼 패미컴은 케이스 디자인과 사양을 일신하여 다시 한 번 히트했다. 이처럼 닌텐도를 위시한 여러 메이커들은 이 시기 명작 게임기와 타이틀을 잇따라 내놓으며 비디오 게임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슈퍼 패미컴은 1990년대 초 현대전자에 의해 한국에도 수입되어 슈퍼 컴보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기도 했다. 라이벌의 잇따른 참여는 90년대 세가 새턴, 닌텐도 64,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등이 벌였던 2차 전쟁을 예고했다.

비슷한 시기 한국은 어땠을까. 80년대는 지금처럼 해외 전자제품의 수입이 활발한 시기가 아니었다. 대신 대우전자에서 MSX를 기반으로 내놓은 재믹스가 잔잔한 돌풍을 일으키며 가정용 게임기 시잠을 개척해 나갔다. 재믹스란 이름 속에 ‘패밀리 컴퓨터’와 비슷한 뉘앙스는 없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 PC와의 접점이 있다. 컴퓨터 업계의 빠른 발전 속도로 인해 대량으로 남아버린 구형 칩을 소진하기 위해 일부 기능을 제한하여 게임 전용 기기로 만든 제품이 재믹스였던 것이다. 패미컴은 제작사 닌텐도가 출시 40주년을 기념해 전용 웹페이지를 오픈하는 등 여전히 기념비적인 모델로 대우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