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침공을 위한 소련의 진정한 비밀병기, 테트리스

미국 침공을 위한 소련의 진정한 비밀병기, 테트리스
초창기 게임 플레이 화면

정방형이 일렬 혹은 꺾어진 형태로 연결된 색색깔의 블록을 틈새에 끼워 맞춰 제거,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게임. ‘테트리스’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테트리스(Tetris)는 이름을 모른다고 해도 원리를 설명하면 바로 ‘아~’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게임이다.

대부분의 명작 비디오 게임이 서방권에서 출현한 것과 달리 테트리스의 원산지는 동구권이다. 개발 주역은 소련 모스크바의 과학 아카데미에서 근무하던 프로그래머 알렉세이 파지노프였다. 그는 새 컴퓨터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5개의 정방형이 결합된 블록을 정해진 공간에 맞춰 넣는 고전 보드게임 펜토미노를 응용한 간단한 게임을 제작했다.

파지노프는 블록 1개를 5개 대신 4개의 정방형 조합으로 바꾸고 펜토미노와 달리 가로줄이 채워지면 그 줄은 화면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규칙을 변경했다. 테트리스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숫자 4를 의미하는 테트라(Tetra)와 평소 좋아하는 스포츠인 테니스(Tennis)에서 가져왔다. 사실 테니스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게임인데, 부담 없이 개발에 임했던 파지노프의 마인드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1984년 6월 6일 모습을 드러낸 테트리스의 첫 버전은 소련제 컴퓨터 ‘일렉트로니카 60’에서 구동되는 것이었다. 별도의 홍보는 없었다. 그러나 게임을 본 모두가 테트리스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파지노프는 이어 PC 시장의 주류인 IBM PC를 위한 버전도 개발했다. 냉전 시기 암암리에 장벽을 넘어 1986년 미국에 출시된 테트리스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규칙과 중독성으로 역시 어마어마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게임 진행은 단순하다. 화면 위쪽에서 떨어지는 디자인과 색상이 각자 다른 블록을 아래쪽에 빈틈없이 쌓으면 된다. 한 줄이 빈틈없이 채워지면 그 줄은 사라지며, 이런 식으로 블록이 위쪽까지 채워지지 않게 계속 제거하면서 버티면 된다.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블록이 떨어지는 속도도 빨라지며 별도의 스토리도 퀘스트도 없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한 규칙과 아이템이 추가됐지만 기본 설정은 그대로다. 1980년대 말 닌텐도가 독점 라이선스를 획득, 자사 제품 NES(패미컴의 북미 출시명)와 게임보이를 통해 출시한 것도 테트리스의 인기를 부채질했다.

그러나 테트리스의 성공에는 한 가지 찜찜한 부분이 있었다. 테트리스는 개인의 지적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 국가 소련에서 탄생한 탓에 오랫동안 저작권 관련 분쟁에 휘말렸다. 테트리스의 저작권은 원칙적으로 소련 정부에 귀속됐다. 불법 복제가 판을 쳤고 개발자인 파지노프는 출시 10여 년이 지나도록 관련 수익을 전혀 얻지 못했다. 파지노프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거액의 가짜 라이선스가 진지하게 거래되는 지경이었다.

파지노프는 게임을 치밀한 상품기획 하에 판매를 목적으로 개발한 것이 아니었기에 프로그램 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다. 게임은 구현이 쉬웠으며 소프트웨어 저작권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소련에 없다시피 했다. 그러면서도 만들어 팔기만 하면 수익이 보장되니 아류작 범람에 가장 좋은 조건이었던 셈이다.

지금은 파지노프가 96년 설립한 TTC(The Tetris Company)를 중심으로 문제가 해결되면서 라이선스를 얻지 못한 불법 복제판은 거의 사라졌지만, 수십 년간 지속된 테트리스의 저작권 분쟁은 아마 게임 역사상 그리고 모든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통틀어 가장 복잡하고 유명한 사례로 지금도 남아 있다.

한때 농담으로 미국인들의 업무 생산성을 저하시켜 냉전에서 승리하기 위한 소련 정보기관 KGB의 계략으로 불렸을 정도로 테트리스의 명성은 대단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버티지 못하고 먼저 무너진 것은 본국 소련이었다. 테트리스는 공학용 계산기에서도, 오실로스코프에서도 구동된 적이 있다. 물론 모바일 버전도 나와 있다. 2014년에는 출시 30주년을 맞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과학기술 행사 ‘필라 테크 워크’에서 133미터, 29층에 달하는 시라 센터 벽면 전체를 테트리스 화면으로 쓰는 플레이가 이뤄지기도 했다. 출시 40년이 지나 어느덧 고전의 반열에 오른 테트리스는 각종 콘솔에 ‘가장 많이 이식된 게임’, ‘공식/비공식적으로 가장 많은 아류작이 나온 게임’ 등으로 불리며 오늘날에도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자랑한다.